2014. 6. 4. 08:55

교수와 강사의 연봉차이…..최악의 불공정거래[세월호의 또다른 이름-대학]1

교수와 강사의 연봉차이…..최악의 불공정거래[세월호의 또다른 이름-대학]1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김영곤 선생님, 안녕하세요.

불철주야, 풍찬 노숙하면서 이 땅의 대학 강사들을 위해, 대학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 내외분에게 한없는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오늘 날 한국의 대학 강사들은 유례없이 수탈당하는 집단이라 생각됩니다. 21세기 현대판 지식 노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고급의 노동자이면서도 가장 저급한 대우를 받고 있고, 부당 처사에 대해 아무런 항변도 못하는 무력한 집단이지요. 지난 수 십 년 간 대학들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전임 교수들 못지않은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공과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대학 교원이라는 최소한의 법적 지위도 부여받지 못한 유령 같은 존재입니다.

한국의 대학은 외형적 성장만 일삼는 거대한 괴물이 되었습니다. 재단의 소수 인물이 이끄는 그 괴물은 대학교수와 교직원들을 하수인으로 부리고 있지요. 그들은 하수인이면서도 기득권자라는 이율배반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지요. 반면 대학 강사와 비정규직 노동자, 학생들은 이 거대 괴물의 피 수탈 집단이고요. 학생들은 이제 4년 동안 교육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 뜨내기 고객들로 취급될 뿐입니다. 대학 강사와 청소직등 비정규직 노동자는 거대 기계를 돌리는 부품이자 소모품 취급도 못 받고요. 대학 강사들은 실질적으로 대학 교육의 40% 이상을 담당하면서도 법적으로는 무자격자입니다. 똑 같이 학위를 받고 똑 같이 연구를 하고 똑 같이 논문을 쓰면서도 시급 알바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 부당한 대우에 대해 전혀 항의도 못하고 경력 인정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제가 작금의 부당한 강사제도의 개선을 위해 제안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이 제안은 강사의 현실적 지위 뿐 아니라 대학생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반값 등록금 운동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름 아니라 강의 실라버스에 직급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를 들을 때와 강사의 강의를 들을 때 등록금을 차등 지불하자는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값싼 물건과 값비싼 물건에 대해 똑 같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시장 논리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안의 이면에 놓인 논리는 현재와 같은 대학의 기만적이고 부도덕한 수탈 정책을 폭로함으로써 교수와 강사 간의 형평을 찾자는 것이고, 대학교육에 기여한 강사들의 정당한 노고를 인정받자는 것입니다. 게다가 대학생들도 자신들의 비싼 등록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아야 하고, 정당한 수업권의 보장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 강사들의 열악한 상황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다음 세대의 학문을 담당해야할 젊은 연구자들의 학문적 전망은 더욱 더 불투명하고 불안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현재의 강사 제도와 강사료가 합법적이라고 강변하면서 후안무치를 일삼고 있습니다.하지만 이것은 법 이전에 정의와 형평의 문제이고 도덕적 정당성의 문제입니다.

현재 대학교수 1명을 채용할 때 들어가는 비용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적어도 강사 10명 이상의 비용이 들어갈 것입니다. 예를 들어 7천만 원의 연봉을 받는 대학 교수와 시간 당 5만원의 강사가 주당 9시간을 강의하는 경우를 단순 비교해보지요. 강사의 경우는 45만*4=180만원이고, 1년을 똑 같이 강의한다고 할 경우 강사들은 한 학기 4개월이므로 1년이면 8개월이고, 따라서 1,440만원이 됩니다. 매학기 강의 확보의 불안에 시달리는 강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정도의 강사는 거의 A 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 그런데 교수의 경우 7천만 원 연봉 외에도 연구실 운영비용, 6년 강의 후 7년째 주어지는 안식년 비용, 연금과 퇴직금 정립,방학 중 연수비용, 4대 보험 그리고 입시철마다 떨어지는 특별 수당 등까지 합친다면 거의 1억 4천만 원 정도로 계산해도 많지 않다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강사 1인을 고용할 때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거의 10배 수준이 될 것입니다. 며칠 전 트위터에 프랑스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고 명문 이화여대에서 대단위 강좌를 운영한 모 강사의 11년 간 총 수령액이 7천만이었다고 하던데, 이는 해당 대학 교수 1년 치 연봉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강사 10명이 교수 한 명 수준도 안 된다는 계산이 틀리지 않죠. 명문 사립대학이 이 정도이니 다른 대학은 이보다 못하면 못하지 결코 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10 배 이상의 수입 차이가 나는 대학교수와 강사들이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격차는 경제적인 것뿐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경제적인 차이, 봉건시대도 아닌 21세기의 대학에서의 신분적 차별이 더 심각할 수가 있습니다.

예,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봉 차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회사의 평사원과 CEO의 연봉이 같을 수 없겠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봉 격차가 커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을 적용하자는 비정규직의 노동자들의 한 맺힌 구호가 나올까요? 그런데 이런 격차도 사회에서는 평균적으로 70%이고, 더 크게 잡아도 50% 수준을 넘지 못하죠. 만약 특별한 사유가 없이 그 이상이 된다면 그것은 착취이고 수탈에 가깝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 사회에서는 똑 같은 학생들을 데리고 한 학기, 1년을 강의하면서, 그리고 똑 같은 강의 평가 기준을 적용하면서도 무려 10배 이상의 임금 차별과 신분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대학교수들과 강사들의 임금 산정 방식이 다르고,또 교수들은 과 행정, 학교 행정 등의 일도 담당한다고 강변할 수 있습니다.물론 그 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런 행정과 관련된 일이 현재의 임금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교수들의 행정과 관련된 일은 보직과 출세에 도움 되는 것이고, 또 연봉 외 수당도 받는 일입니다. 그것이 강사들의 현저한 부당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 정도 임금 차별은 사회에서는 시급 알바 생 하고 임원들의 차이에서나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일하는 방식이나 내용, 그리고 책임 정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차이를 문제 삼지 않지요. 그런데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은 전혀 그런 차이가 없습니다. 강의실에 들어오는 학생도 동일 대학 학생이고, 강의 내용의 수준도 강사라고 해서 봐주는 것 없습니다. 오히려 강사들은 교양과 관련한 대단위 강좌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 관리도 힘들고 성적 처리나 리포트 피드백 등을 감안한다면 소규모 전공 강의를 운영하는 교수들의 노고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어떤 이들은 전공과 교양 수업 간에 강의 준비와 운영상의 난이도가 크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학 강의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저학년 교양 강의이고 그 다음이 전공 강의이며, 끝으로 대학원생들 데리고 하는 세미나 강의가 가장 쉬운 강의라는 사실은 대학 사회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런데도 강의 평가 기준을 똑 같이 적용하고, 교수들과 달리 평가가 나쁜 강사들은 바로 해고해버립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을 가르치는 사람을 강사로 생각하고 강의실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실상 학생들에게는 강사나 교수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다만 강의 내용이 좋고 들을만한가 또 들어서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인가만이 중요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강의와 관련해서는 임금 수준에 관계없이 똑 같이 강의하고, 대학도 유독 강의와 관련해서는 교수나 강사를 똑 같이 취급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학생들하고 관련된 강의 및 평가에서는 교수와 강사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임금과 신분상에서, 경제적으로나 법적으로 큰 차이와 차별이 존재할까요? 이렇게 한 치의 차이가 없음에도 교수와 강사 간의 연봉 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동일 노동에 대해 어떻게 이런 엄청난 차별, 부당하고 불공정한 차별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학생들 입장에서도 비싼 등록금을 내고 구입한 교육 상품(?)이 이렇게 불공정하게 가격이 책정되었다는 사실을 안다고 하면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할 것입니다. 학생들은 어렵사리 구매의 자격을 얻어 고급의 매장에서 고급의 브랜드가 붙은 상품을 비싸게 구입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구매를 하는 과정은 너무 경쟁이 심해 눈물겹기도 합니다. 해서 구매가 확인되는 순간 학생들은 자신들의 현명한 결정에 대해 감격해하기 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매한 상품이 하나는 정상적인 통로를 통해 정상 가격으로 책정된 상품이지만 다른 하나는 전혀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법적인 교원 자격도 부여하지 않고 달랑 4개월짜리 계약서 하나를 가지고), 전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매집한 상품에다가 자신들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한 상품인 것입니다. 좀 거친 비유를 든다면 부도 직전의 회사나 값싼 노동력으로 만든 중국산 덤핑 물건을 뒷골목 시장에서 구입 해다가 신세계나 롯데 등의 고급 백화점 매장에서 고급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판매업자인 대학들은 무려 10배 이상의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도처에 널려 있는 이처럼 싸구려 덤핑 물건들을 값싸게 사들여 자신들의 매장의 거의 40% 이상을, 더 심한 곳은 70%까지 진열해 놓고 있습니다. (예, 거친 비유이겠지만 오늘날 한국의 대학 강사들의 질(質)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격 면에서는 중국산 싸구려 수입품이나 부도 회사의 덤핑 물건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강사 문제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교육부는 점차적으로 강사 비율을 줄이고 교수 비중을 늘리겠다고 합니다. 교원 비율에 따라 대학 평가와 지원을 달리하겠다고 압박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편법의 달인들인 한국의 대학들은 비 정년 트랙, 강의 전담 전임 계약직 교원들을 대거 뽑아 들여 이전에 강사가 담당하는 강의를 비슷하거나 낮은 비용으로 훨씬 많은 강의를 떠넘기고 있습니다. 명색이 대학의 전임 교수인데 월 150만원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서울의 종합 대학들에서도 비일비재합니다. 어떤 경우는 2학점짜리 80명 단위의 수업을 8개씩이나 강의하면서도[한 학기에 80*8=640명] 연봉이 3천이 되지 않고, 그것도 2년 지나면 재계약을 빌미로 용도 폐기시킵니다. 그러니까 대학의 입장에서는 시간 강사들에 들어가는 정도의 비용으로 무늬만 전임들을 고용할 수 있으니까 교육부 평가도 높이고 지원책도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손 안대고 코푸는 야바위꾼들의 사기행위와 같은 이런 편법을 이용해서 대학들은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행태를 진리의 상아탑 속에서 부끄럼 없이 일삼고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교육부는 전임 비율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달리 한국의 대학에는 초빙, 외래, 대우, 강의 전담, 비정년 트랙 등 당사자들도 헷갈리는 직급이 많지만 본질은 하나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시간 강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이런 원천적 착취와 수탈 구조 속에서 오늘 날 한국 대학에서 강사들, 비 정년 트랙 전임들,계약직 강의 전담들의 강의 비중은 40%를 훨씬 상회합니다.) 이런 실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취하는 폭리를 그들의 탁월한 장사 솜씨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대학의 탁월한 솜씨가 아니라 기만이고 사취이고 협잡일 뿐입니다.

아주 예외적인 사정이 아니라면 모든 시장가격에는 상품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공정 가격이 형성됩니다. 그런데 다른 진열대에 있는 똑 같은 상품들에 비해 무려 1/10일 수준으로 구입해서 똑 같이 판매한다면 이것은 상도덕 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사기이자 기만입니다. 그것도 고급 백화점들과 같은 대학들이 말입니다. 만일 신세계나 롯데 백화점에서 이런 상행위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날로 문을 닫아야 할 만큼 여론의 질타와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 이마트에서 직원들의 노동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불법 감시를 하다가 언론에 노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마트에 대한 사회적 비난으로 인해 최고 책임자까지 앞장서서 사죄하는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행위들은 법 이전에 도덕적 공분의 대상이며, 우리 사회가 그런 불공정과 부도덕을 묵인할 만큼 불감증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지성과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에서는 이런 야바위꾼들의 협잡과 같은 행위들이 지금까지도 낯 뜨겁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대학들과 그 부역자들이 과연 사회를 향해 비판과 양심의 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