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19. 00:15

대학생과 학습권/김재의 서울대대학생사람연대 대표


대학생과 학습권
2009년 06월 18일 (목) 20:50:48 김재의 서울대 대학생사람연대 대표

 

   
▲ 대학-성 (사진/이광수)

필자가 다니는 서울대 사회과학대는 전공진입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학부생으로 들어와서 1년 동안 전공탐색과목을 듣고 학년 말에 자기가 들어가고 싶은 전공을 고른다. 물론 전공을 선택한다고 해서 다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경제학과 등 인기전공으로 가기 위해서는 높은 성적이 필요하다. 그래서 새내기들은 무슨 수업이 좋은지, 전공탐색과목은 어떤 것을 들어야 좋은 학점을 딸 수 있는지를 묻곤 한다.

인문학적 고민이 없는 친구들

필자가 문제라고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지적인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하다못해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 사회와 인간에 대한 고민을 통해 가치관을 정립하려는 시도 자체가 별로 없다. 학점을 잘 주는 과목이 아니면 사고하고 있는 주제의 폭을 넓히거나 답을 찾기 위해 수업을 듣는 경우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공부’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수업을 통해 그 욕구를 다 충족시키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외부 세미나에 참여하거나 혼자서 공부를 함으로써 이런 욕구를 충족시킨다.

물론 그 역시 소수일 뿐이며 대다수는 수업을 통한 ‘지적 여정’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심지어 ‘숲과 인간’ 이나, ‘화산과 지진’과 같은 과목들을 단체로 듣는 새내기들도 많다. 필자는 새내기들이 결코 흥미가 있어서 이 과목을 듣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지질학적인 관심이나 숲에 대해 뭔가 알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새내기들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 부분 이 과목을 듣는 배경은 선배들이 이 과목을 수강했으니 강의 평가를 담은 족보를 가질 수 있다는 것과 같은 학년의 동기들이 과목을 듣느니만큼 ‘위기가 오더라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신뢰에 기인한 동기일 터이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동아리 활동은 뒷전 

사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선택을 한 학생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조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대학생의 학습권 자체를 보장할 수 없는 대학의 지적 풍토가 사실 문제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전공을 잘 선택하려면 다른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관심 있는 과목들을 다 챙겨 들으면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러니 어느 정도 자신의 지적인 욕구를 포기하면서 학점 잘 주는 과목으로 쏠리게 되는 것이다.

수업뿐만이 아니라 동아리 활동이나 기타 자신의 관심사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제한되어 있다. 혹자는 서울대생이니만큼 졸업하고 나서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 반문할지 모르고, 또 그런 반문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금융연구회나 투자연구회 등 기업에서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스펙과 관련한 부문이 아니면 동아리 활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을 취직 전까지 계속하거나 그것을 통해 진로를 모색하는 경우란 찾아보기 힘들다.

취업을 위한 안간힘

필자는 학내에서 자원활동 동아리를 하고 있는데, 이 자원활동 동아리에 4학년이 되도록 남아 있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만하며, 그나마도 동아리 활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던 사람들 중 다수는 학점교류나 군대 등을 갔다 오면 가끔씩 술자리에 나오는 것 외에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 그들의 의지가 부족하거나 소외감을 느껴서 그런 게 아니라 주변의 사회적 환경이 그것을 강제하는 것이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위에 짧게 언급한 것처럼 개인적인 이득이나 자신의 경력과 관련된 부분은 적극적으로 찾아 하고, 그것을 취직 전까지도 계속하면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의미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대에서 금융이나 모의투자와 관련된 학회들이 리크루팅을 하면 적게는 100여 명, 많게는 그 이상의 인원이 몰려든다. 반면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회나, 연극단 등의 단체들은 매 학기를 유지하기 힘들다. 심한 경우 회원이 한 자리수로 줄어 그 다음 학기에 해소되거나, 일시적으로 붐을 맞아 부흥한다고 할지라도 인원수가 얼마 안 되고 경험부족 등의 이유로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 와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킨다는, 사회에서 통하는 보통 상식은 대학가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금융 연구 동아리와 같은 경우 금융공학이나 경제학을 공부한다는 기쁨을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뒤에 어쨌든 기업으로부터의 특채 채용이라든지 면접에서의 좀 더 나은 기회와 같은 변수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보면, 이 전반적인 대학사회의 현실이 더 우울하게 보이지 않는가.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이걸 가능하게 만드는 맥락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같은 거시적인 변수들 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사회에서 대학이 노동시장과 연계하여 기능할 수밖에 없는 조건과, 대학 당국이 항상 되풀이하는 학교의 재정적인 문제와 학교의 장기적인 목표 같은 것도 그 안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선 대학이 공부를 하는 곳이고, 그 공부를 통해서 고등학교 3년을 거치면서 형성된 창의력 빈곤의 상태를 극복하는 위상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함에 반해 우리나라의 대학은 그런 것들이 전무하다는 사실이고, 대학당국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일을 분명히 함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사장의 비리와 친인척 문제, 부정축재로 얼룩진 사립대야 그렇다 치더라도, 공립고등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서울대까지 그러는 건 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서울대에서만 세 분의 비정규직 교수 자살

나는 비정규강사 문제가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교수 혹은 강의담당자에게 어떤 취급을 하는지의 여부가 ‘교육’에 대해 대학이 어떤 인식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경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세 분의 비정규강사들이 자살하셨다. 세 분 다 인문대 출신이셨고, 생활고와 교수임용 등 복합적인 문제 때문에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다. 선생님들이 자살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학생들에게 여유를 가지고 수업을 하실 수 있으며, 학생들을 하나의 제자로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충분한 지적 성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겠는가?

실제로 서울대의 경우 교양수업 60~70%를 비정규강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반면 강사들이 받는 임금은 1년 1080만 원, 한 달 90만원을 조금 넘는다. 3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 97만원을 밑도는 액수다. 서울대 소속의 강사 1251명에 대해 주어지는 편의시설은 공동연구실 33개, 휴게실 7개뿐이다. 사회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가치관이 정립되는 수업의 다수를 비정규강사들이 담당하고 있는데, 이 분들에 대해 대학 당국에서 신경 쓰지 않으니 열악한 강의와 열악한 학부생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서울대는 지난 2009년 3월 비정규강사 처우개선을 위한 조치들을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비정규강사를 1~3년 계약직의 강의교수로 바꾸겠다는 것이 골자인데, 의의는 있겠지만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는 없다. 문제가 진정 해결되려면 비정규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지금의 법조항이 바뀌어야 한다. 현행법상 선생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대학에서 선생님 대접을 해주지 않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고, 이것은 서울대를 넘어 다른 대학에도 적용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의 기업화, 비정규교수의 열악한 교육환경

기실 앞에서 언급했던 여러 가지 문제들과 비정규교수의 문제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대학생들이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유가 비정규교수가 열악한 환경에서 강의를 하기 때문이고, 또 역으로 비정규교수가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 것은 전반적인 대학교육의 기업화 - ‘실용화’와 연계되어 있는 움직임 때문이기도 하다. 동아리 활동을 안 하는 이유는 사회에서 동아리 활동에 대한 보상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을 통한 개인의 성장가치에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지식과 창조’와 같이 서울대 본부에서 지향하는 가치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대학사회가 움직이고 있으며 그 큰 변화의 부작용이 비정규교수에 대한 처우 문제, 그리고 대학생들의 지적 위기로 표현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대학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학생들과 비정규교수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있는 셈이다. 서로의 문제가 서로에 연동되어 있는 것이다.

3년쯤 전 내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인 신영복 선생님이 와서 강연을 하셨다. ‘대학은 기성 이데올로기의 아성이기도 하지만 비판적인 지성의 장이기도 하다’ 라는 구절이 참 기억에 남았다. 지금 대학은 점점 전자처럼 변해가고 있다. 행동이 필요할 때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김재의(서울대 대학생사람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