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20. 21:02

법학, 치-의학 전문대학원에 가지 않을 자유

법학, 치-의학 전문대학원에 가지 않을 자유
[오늘, 대학을 말한다-9]
2009년 07월 16일 (목) 18:52:53 박정훈 대학생사람연대 대표, 부산대학생

   
▲지금 대학생의 공부는 높은 몸값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었다 (사진/이광수)

2008년,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안검사를 만난 적이 있다. 지난 해 촛불이 한창 타올랐던 6월 10일 부산 서면 로타리를 점거를 주도했다는 이유였다. 검사실에 들어가 꾸벅 인사를 했지만, 검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분명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서 나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했지만 범죄인 취급을 당해야 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았다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6명이 목숨을 잃었다. 검찰은 이 모든 것이 철거민 탓이라고 이야기하며, 관련자들을 모두 구속했다. 경찰은 무혐의였으며, 조직폭력배 4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계속해서 ‘법치’를 강조하고 있는 요즘, 사법부에 속한 사람들은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들을 해본 적이 있을까? 한쪽에서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이 위헌이라고 생각한 판사가 위헌제청을 하고 판사직을 그만두기도 했다. 그런데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관이라는 사람은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빨리 판결을 내라고 이야기한다. 법에 대해 철학이 없는 사람이, 사법부의 최고수장이 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과대학을 로스쿨로 전환해서, 법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고자 했던 것 아닌가? 다양한 과에서 학부공부를 마친 대학생들이 로스쿨에 진학하여 토론이 이루어지고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학부는 로스쿨을 가기위한 통로로 변질됐다. 의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한 이후, 생명공학부 등에 대거 몰려 커트라인이 올라간 사례도 있었다. 한편, 로스쿨 합격생의 3분의 2가 서울 수도권 대학 출신이었다. SKY대학이 각각 288명, 161명, 140명의 합격자를 냈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안정된 일자리와 몸값을 올리기 위한 과정인 구조 속에서 로스쿨만 덜컥 도입한다고 해 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로스쿨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요즘 사범대에 가보면, 진정으로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위해 진학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전문대학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사법부와, 인간을 가르치는 교육,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은 안정적인 일자리로 바뀌어 있었다. 흔히들, 이러한 문제를 요즘 20대들의 도덕적 결함, 이타심의 부족 등으로 꼽는 데, 이것은 진정한 원인이 아니다.

이태백이 풍류를 즐길 없는 ..

이것의 진정한 원인은 20대들의 불안한 미래, 즉 불안정한 노동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20대들이 이태백(이십대의 태반이 백수)의 이름을 가지고도 제대로 풍유조차 즐길 수 없다. 값싸고 언제든지 자를 수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를 착취하여 성장해온 한국사회가 20대들과 대학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멋진 예술가를 꿈꾸는 10대들은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를 위한 그림을 엄청난 사교육을 들여 배우고 그린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잘 팔리는 그림, 상품가치가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이에 따라 대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이 높은 몸값을 받거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대학은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1년에 1000만원을 받고 대학 졸업장을 판다. 비정규직 교수문제는 이러한 대학의 모습을 현상적으로 잘 보여준다. 대학운영을 기업으로 생각하고, 교육을 상품으로 생각하는 ‘철학의 빈곤’과 이것을 옹호하는 사회구조의 ‘빈곤한 철학’이 문제이다. 비정규직교수의 과거와 20대 청년들의 미래라는 시간의 대칭이 대학 교양수업 강의실에서 겹쳐지고 있다.

이 문제는 대학교육과 산업구조, 노동시장에 대한 거대한 변형이 있어야 해결가능하다. 21C의 새로운 가치는 지금까지 가치로 인정받지 못했던, 보육과 육아 장애인 활동보조인 등과 같은 돌봄 노동과 사회적 노동에서 나올 수 있다. 이미 한계에 부딪힌 자연에 대한 수탈에서 벗어난 생태적 발전 역시 21세기의 새로운 가치이다. 그리고 지식, 문화, IT사업에 기반을 둔 고부가가치 사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고숙련노동과 이것을 위한 평생교육시스템, 그리고 창의적 노동을 위한 생활의 안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실제로 고졸에 독일어밖에 할 줄 모르는 스위스의 노동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계를 만드는 고숙련 시계공이 되어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수 천 만원을 들여 대학을 나온 한국의 대학생들은 청년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삶이 보장돼야 학문의 자유도..

유럽에서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충분한 휴식과 사유의 시간 이후에 창의적 노동이 가능하며, 생존의 위협 때문에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OECD 국가 가운데 세계 1위의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21C형 산업사회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또 현재 OECD 평균인 20%에 훨씬 못 미치는 5% 정도의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안정망의 구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가질 수 있다.

최근 이것의 유력한 정책적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브라질의 룰라 정부는 2010년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겠다고 밝히며, 현재 소액의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이미 좌․우를 막론하고 정책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라는 각국의 기본소득 관련 단체들의 연대체도 존재한다.

이렇게 인간의 삶이 보장되어야 만이 대학에서의 학문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으며, 대학생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자신의 철학과 무관한 법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몰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굳이 대학에 가지 않고, 어릴 때부터 단편영화들을 촬영하며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동이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진정한 학문을 하고 싶은 이들은 인문학과 기초과학과 같이 소위 ‘배고픈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마음껏 공부 할 수 있다. 20대의 청년들이 대학을 가는 이유가 생존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이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마음껏 자신의 학문을 연구하는 20대의 미래이길 기대해본다.

글 박정훈(대학생사람연대 대표, 부산대학생)
사진 이광수(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 인도사 전공)

 <이 기획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nahnews.net/와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http://stip.or.kr/와 함께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