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 22:13

세계의 대학과 학문의 자유/박광주


세계의 대학과 학문의 자유
[오늘, 대학을 말한다-13]
2009년 08월 02일 (일) 01:44:44 [조회수 : 40] 박광주 .

 

   
▲학문의 자유는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개념이다.(사진/이광수)

대학은 과거를 밝혀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구상하는 싱크탱크다. 과거, 현재, 미래, 이 모든 시대에 대해 인류는 아직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역사를 “사실이라는 핵을 둘러 싼 해석이라는 과육”으로 비유했던 역사학자 카의 말을 차용해서 말한다면, 우리는 아직 ‘사실’에 대해서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을 뿐만 아니라, ‘해석’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에 따라 너무나 다양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다.

주어진 틀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사회적- 속에서 사유하도록 강요된다면 우리는 지금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한 치도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미지의 것을 새롭게 밝혀내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생각을 다듬고 (연구), 전달하는 (교육) 곳인 대학은 이 점에서 세상의 어떠한 속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만 한다. 주어진 틀 속에서 사고하는 곳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단적인 생각이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는 곳에서만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날 수 있다. 인류문명의 진보는 기존의 틀에 도전하거나 틀을 깨는 자유로운 사고에 의해 이끌어져 왔다. 모든 창조적 사고는 자유롭다.

학문의 자유는 인간이 지닌 기본적 인권의 일부이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전달할 수 있는 권리는 대학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민주사회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만 하는 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학문의 자유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대학인들의 발언이 지닌 대중적 파급효과 때문이다. 정권이나 종교세력 또는 경제세력이나 사회세력들이 대학인들의 발언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 세계적으로 대학과 대학인이 누리고 있는 학문의 자유는 자국에서 보장되고 있는 기본적 인권의 정도에 비례한다.(영국에서는 대학의 자율성이 미국에서는 대학인 개개인의 자율성이 강조된다) 비교적 인권보장이 잘 되고 있는 유럽과 북미지역에서는 학문의 자유가 잘 보장되고 있는 셈이지만, 정치적 자유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지역에서는 학문의 자유가 위태롭다. 아프리카지역의 경우 전반적으로 학문의 자유가 취약한 상황이고, 중동지역이나 아시아의 일부에서도 학문의 자유는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5세기 르네상스의 여명기에 그리스의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망명한 사건 이래 지식인들의 고난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다. 1930년대와 40년대 유럽전역에 걸친 학자들에 대한 박해, 냉전기간 동안 동구에서의 학자들에 대한 숙청에 쌍벽을 이룰 정도의 미국에서의 반공을 앞세운 학자들에 대한 숙청, 1970년대와 80년대 중국, 동남아, 남미 등지에서의 지식인 탄압운동, 그리고 1990년대 국내외적인 분쟁과 자원고갈사태 속에서 자행된 아프리카의 대학인들에 대한 탄압 등에서 보는 바와 같다.

‘학문의 자유를 위한 대학인들 (Academics For Academic Freedom: AFAF)’, ‘망명 대학인들을 돕는 모임 (Council for assisting refugee academics: CARA)', '위험에 처한 학자들 (Scholars at Risk: SAR)', ’교육과 학문의 권리를 위한 연대 (Network for Education & Academic Rights: NEAR)' 등 학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만 결성된 국제적 기구들이 존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지역에서는 유럽 최고의 대학인 볼로냐대학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계대학헌장”이라는 볼로냐선언에서 학문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미국대학교수협회가 작성한 “1940년 학문의 자유와 정년보장의 원칙선언” 에서 학문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세계의 대학인들이 함께 만든 ‘학문의 자유를 위한 대학인들’ 모임은 “강의실의 안팎에서 기존의 지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시험하고, 또한 논쟁적이거나 인기없는 견해를 사람들의 호오(好惡)에도 불구하고 개진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자유를 대학인들이 지닌다는 사실과, 그리고 대학당국자들이 이 같은 자유를 제한하거나 처벌 또는 해고의 사유로 삼을 수 있는 어떠한 권리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원칙이 학문의 자유의 근본이라는 “학문의 자유 선언”을 하고 있다.

학문의 자유란 궁극적으로 교수직의 안정성과 직결된다. 대학인이 그의 연구나 강의 및 사회활동과 관련하여 교수직에 위협을 받게 된다면, 이는 학문의 자유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된다. 기본적 인권에 대한 인식이 정착되지 못한 곳에서 이 같은 위협은 상존한다. 군사정권시절의 남미나 비민주적 정권들이 세력을 지니고 있는 아프리카나 중동의 일부국가들, 그리고 아시아의 일부국가들의 경우 기존질서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정부의 것과는 다른 견해를 표방하는 교수들에 대한 직접적인 박해는 여전하다. 이들은 “위험인물”, “혐의자”, “비애국적”, “반체제적”, “이적행위자”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정치권력의 테러나 과격사회세력의 타도대상이 된다.

한국사회에서 정부 비판적 발언이나 진보적 발언에 대해 “반체제적”, “용공분자”, “좌빨”, “친북세력” 등의 멍에를 덧쒸우는 것과 같다. 카이로에 있는 아메리칸대학교의 사회학교수 사드 이브라힘은 EU의 지원을 받아 이집트의 선거부정에 대한 기록영화를 제작하다가 허가받지 않은 자금수수, 허위사실의 해외유포, 자금횡령등의 죄목으로 투옥되었다. 정부의 공식발표보다도 더 높은 유아사망율을 발표한 아프리카의 교수가 대학강단에서 강제로 추방된 사례도 있다. 심지어는 반체제로 낙인찍힌 교수가 교직을 박탈당하는 것을 넘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 남의 나라 예를 들 것도 없이 유신시절 간첩으로 몰려 의문사한 최종길 교수의 경우가 있다.

학문의 자유가 정착되었다고 하는 곳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 볼로냐선언이 있고 미국에서 미국대학교수협회의 선언이 있다는 사실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다. 최근 미국의 10대 사학중의 하나인 디폴대학교에서 정치학자 핑클스타인에 대한 정년보장거부사건은 교수가 학문적 양심에 따라서 한 발언으로 인해 미국대학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다. 미국의 중동외교정책에 대한 친이스라엘로비에 대해 강하게 비판해 온 핑클스타인에 대한 정년보장이 해당학과와 해당대학의 강력한 추천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친이스라엘 그룹의 영향을 받아 학교당국에 의해 거부되었다.

핑클스타인사건은 학자들이 대중적으로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민주주의사회에서도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분명히 해준 사건이라 하겠다.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는 비민주적 국가권력에 의한 명백한 인권탄압의 경우뿐만 아니라, 민주사회에 있어서도 대중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이슈들 예컨대, 전쟁과 평화 또는 국가안보, 노동문제, 경제 규제와 탈규제, 국유화와 민영화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대학외부로부터의 간섭에 노출되기 쉽다. 정당이나 정파, 정치인개개인, 경제적 이해관계집단, 종교집단, 애국조직, 과격민간집단, 인종단체 등 다양한 외부세력으로부터의 간섭에 노출된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학의 상업화경향은 민간후원자들의 입김에 대학당국자들이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2008년 10월 에치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에서 사흘동안 개최되었던 “동부 아프리카 대학들의 학문의 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는 국제 포럼에서 모든 참가자들이 학문의 자유가 유럽적 특수개념이 아니라, 마치 인권이 보편적인 것처럼 보편적 개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것은 학문의 자유가 갖는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교육을 통해 각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미래의 세대를 생산하고, 궁극적으로는 인류사회를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창조적 사고와 패러다임 개척적인 주장이 필요하다.

기득권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또는 넓은 의미에서 사회적이든- 의 압력에 순응하는 ‘안이한’ 사고만이 허용된다면, 현실이 당면한 문제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상황 하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을 우선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갈리레오나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결코 나올 수 없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인간사회의 제문제들이 결코 개선될 수 없다. 봉건적 신분제도, 사회적 불평등, 인종적․민족적 편견, 정치적 갈등에 기반한 현상황의 돌파구가 결코 열릴 수가 없다. 평화, 사회정의, 협력과 경쟁의 조화라는 보다 인간적인 삶의 조건을 위한 새로운 사고가 피어 날 수가 없다.

기본적 인권이나 정치적 자유와 마찬가지로 학문의 자유 역시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볼 때 균질적이지 않다. 학문의 자유를 위한 전세계적인 연대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고 또 작동해야 할 이유이다.

박광주 (부산대학교 교수)
사진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 인도사 전공)

 *이 기획물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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