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28. 06:24

욕망의 소도시, 지방대학을 지방에서 석방하라/홍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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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소도시, 지방대학을 지방에서 석방하라
[오늘, 대학을 말한다-4]
2009년 06월 25일 (목) 13:18:28 홍상현 대학생, 영남대 법학부

   
▲지방대에 다니는 대학생은 무능한가? (사진/이광수)

한강 이남에선 가장 우수한 대학

지금 여기, 서울에서 약 300여km 떨어진 경북 경산의 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고 아름다운 캠퍼스로 정평 있는 OO대학교는…” 통화연결음이다. 교내기관에 전화를 걸때마다 이 말을 듣게 되는데 참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강 이남의 지역명문대학. 우리 사회의 대학에 대한 지도를 적확히 드러내는 이 말. 지방대는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많은 지방대학이 각자 한강 이남에선 가장 우수하다고 말한다. 그나마 비좁은 대한민국을 토막 내는 것도 모자라 지역 내에서도 또 분할하여 새로운 빌보드를 만든다. 무엇이 한강을 기준으로 대학을 갈라놓았을까?

굳이 지방대학의 역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방대학은 지역민들의 자존심처럼 여겨져 왔다. 특히 지역의 명문대학은 졸업과 동시에 그 지역에선 최고라는 자부심과 함께 특유의 인맥중시 경향으로 인해 우선 채용되는 특혜를 누려왔다. 마치 신토불이처럼. 그러나 현재는 알다시피 지역기업의 일자리조차 서울, 수도권 출신대학 졸업자들이 모두 채우고 있다. 일자리처럼 심지어 올해 개원한 법학전문대학원도 그러하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동시에 지방대의 위상은 끝없이 추락하고 인식은 더욱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따져보자. 서울권 대학과 지방대학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지방대학생 수준이 낮다고...

우선 흔히 거론되는 학생의 질적 수준 문제 즉, 서울권 대학생들에 비해 지방대학생들의 지식수준, 학업능력 등이 낮다는 것이다. 물론 지방대학이 서울권대학보다 입시성적이 낮은 것은 확연하다. 몇몇 특수대학이나 특수학과는 예외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더욱 두드러진다. 그 외에도 지방에 있다는 것 자체로 소외되는 것은 수없이 많다. 각종 문화적 행사, 사회적 관심, 언론의 관심에선 항상 뒷전이다. 교통이 불편한 것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라도 지방대가 언론의 관심이 되는 것은 높은 등록금이나 특종감의 사고가 터졌을 경우에나 관심을 받는다.

또한 서울권 학생들에 비해 지방대학생들은 자기표현에서 서툴고, 부족하다는 인식이다. 대체로 다양한 문화와 소비를 접하며 경험을 쌓아온 서울권 학생들은 옷 입는 것부터 세련되고 또 말과 자기표현에 있어 충실하다. 반면 지방대학생들은 침체된 지역의 분위기에 처음 주눅이 들고, 소위 열등감을 갖기 때문에 자기표현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사람들은 또 백화점식 학과 제도를 탓하기도 한다. 대학 중에서도 종합대학이 많으며 학과 또한 천편일률이기 때문에 경쟁력이 없다고들 말한다. 서울권 대학은 가만히 있어도 학생들이 몰려 정원이 채워지는 편이지만, 지방대학은 직접 뛰어도 매년 정원을 채우기가 힘들다. 강의실 풍경은 어떤가. 교수들은 학생 목소리 한번 듣기가 힘들다. 그나마 출석이라도 부르는 날이면 모르지만, 요즘엔 카드로 전자출결을 하는 시스템이라 학생들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유령처럼 출석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교수들은 질문과 발표를 평가점수에 넣기도 한다. 그러나 다 허사다. 강의보다는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일이 우선인 학생들은 토익과 자격증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런 탓에 비자발적인 토론과 질문은 결국 공허한 메아리만 반복될 뿐이고, 수업의 열기는 점점 식어만 간다.

욕망의 소도시를 둘러싼 ‘파수꾼들’

지방대를 지방에서 가두고 있는 제1의 파수꾼은 학생들의 열등감과 지방대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이다. 이 둘은 교묘한 관계를 끊임없이 이어가며 학생들을 곤혹에 빠트린다. 학벌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괜스레 소속대학을 말하기가 꺼려지고, 자신감이 줄어든다. 이것이 비단 개인만의 차이일까. 가끔 일간지를 보면 세계대학 순위에서 서울대가 몇 등이니 하는 기사가 대문짝만한 제목을 달고 1면에 게재될 때가 있다. 또 매스컴뿐만 아니라 온갖 광고(병원, 학원 등)에선 “서울대 출신 전문의, 연·고대 출신 선생님 영입”과 같이 광고명보다 대학명이 더 크게 표시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인터넷에선 끊임없이 학벌의 재생산과 분배가 이뤄지며 소위 ‘지잡대’(지방 잡 대학의 줄임말)라는 표현을 써가며 지방대학을 깔아뭉개기에 정신이 없다. 어떤 경우에는 학교를 가는 길에서도 그러한 일이 생긴다. 편입학원 광고지다. 그 학원에 등록만 하면 자신의 학벌을 마치 세탁이라도 할 수 있으며, 소외당한 정신을 말끔히 치료라도 해줄 수 있단 듯이 편입학원 광고지는 떠든다. 마치 지방대생을 위한 전문병원인양.

다음으로는 가볍고 뻔해빠진 사회적 풍토를 들 수 있다. 학생들이 즐겨보는 대학전문 잡지에선 스쿠터가 어쩌고, 올 여름패션은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한참 나오고 난 뒤에야 잠깐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은 고충, 인턴을 하며 겪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 뒤엔 또 어느 집 커피가 맛있니 하는 얘기가 이어진다. 대기업들과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도 마찬가지이다. 모그룹의 대학생 전문 게시판에서는 각 지역 학생들이 자신의 대학 주변 또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말하지만, 가십이나 허황된 말들로 포장한 포부들이 대부분이다. 그 기업의 사이트에서 자신을 더 돋보이기 위해 아첨을 하고, 그곳에서 활동을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스펙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은 그 기업에 꼭 취직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안주하는 지방대생이란 소리는 술안주나 하라지”

그렇다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하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단 지방대생들의 취업률 결과가 어떻든 간에 학생들의 자신감 향상이 곧 모든 일의 시작이므로 학교는 이를 향상시키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우선 대학홍보팀을 앞세워 학교와 관련된 대외적 행사홍보나 각종 수상자와 장학혜택을 끊임없이 홍보하며 학교의 이미지를 쌓으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한 지방대학캠퍼스의 등록금이 전국 최고로 나타났다면 그 순위 분석은 잘못 계산됐기 때문에 전국에서 제일 비싼 것은 아니라는 식이다. 그럼에도 등록금이 천만 원이 넘는 것은 변함없으며 비교대상이 된 대학이 지방에 있건 서울에 있건 간에,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변함없기 때문에 실상은 순위매기기가 숫자놀음에 불과함에도 학생들은 혼동하게 된다. 이외에도 “국회의원 몇 명 배출, 특정지역에선 OO대학 나와야 출세”등의 기사로 학생들을 환상에 젖게 만들기도 한다.

그 외에도 하는 일은 많다. 학생취업률 제고를 위해 ‘취업 스터디룸’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한다. 항상 스터디룸 근처에선 우렁찬 인사소리와 자기소개가 복도를 울린다. 그러나 취업스터디룸이 늘어나고 새로운 건물이 일 년이 멀다하고 솟아나도, 강의실에선 항상 자리가 모자라고, 열람실 역시 마찬가지로 자리를 맡기 위해 아침마다 뛰어와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지방대 학생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물을 것도 없이 취업에 목매고 있다. 토익, 자격증, 인턴 등을 통해 스펙을 쌓기 위해 휴학을 하는 학생들의 수는 늘어만 가고 있으며, 학점을 일부러 포기해 졸업을 미루기도 한다. 이는 비단 지방대학생의 모습만은 아닐 것이지만, 학생들은 지방대학이라는 단점을 이겨내기 위해 수많은 공모전, 자기소개서를 준비하고 방학 때면 어학연수 등으로 숨 돌릴 시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리나 학생회 활동을 하는 사람은 낙오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지방대학생 대부분은 서류심사에서부터 떨어지는 현실이다. 학벌사회에서 지방대학의 꼬리표를 달고는 서류에서 통과하기조차 쉽질 않다. 혹은 편입철을 기다리며 이를 준비하는 메뚜기족도 간혹 있다. “토익 책이 너덜해지고 입사지원서에 잉크가 마를 날이 없어도 바뀌지 않는 것은 지방대 학벌이라는 꼬리표더라”고 술자리에서 한탄하던 선배의 말을 떠올리면 편입역시 전혀 특이한 모습이 아니다. 아예 수능을 다시 치는 경우도 있다. “제대한 후 재수를 해서 ‘욕망의 대도시’로 갔다는 과 선배. 이제 욕망의 ‘소’도시에 남은 사람은 나뿐이다. 이 도시에선 한 사람이 줄어들고 또 늘어나는 끊임없는 가감만이 계속된다”는 생각이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결국 모두가 지키지 않는 지방대학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지방대학을 살릴 방법은 없나?

그렇다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주요문제는 지방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개선과 그에 따른 역량강화이다. 수능세대, 그 중에서도 입시성적이 낮아서 지방대학에 입학했다는 인식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렇다고 대학 내내 공부도 안하고 또 못한다는 것은 아니올시다. 서울이건 지방이건 간에 지금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을 모르는 한국의 대학생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지방대학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낳고 확산되고 있다.

인식을 개선하는 여러 가지 방법에는 우선 정부의 지방대학에 대한 지원에 있어 특단이 필요한 것이다. 지역대학과 지역을 위한 정책의 증대와 지원이 필요하다. 즉, 지역대학의 특색을 살린 학문에 대한 지원강화와, 대학생들의 교육활동, 봉사활동 등을 통한 지역민과의 교류증대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정책적인 방법이다.

또한 지역대학들은 대학 간 연계를 통해 지역별로 특색 있는 학문의 심화와 지역대학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일에도 힘써야 한다. 예를 들어 광주와 같은 민주화 도시에서는 그와 관련된 지역학문, 경북과 같은 경우에는 독도영유권 문제와 관련된 학문의 강화 등. 이미 기성의 방법 외에도 그러한 스토리를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지역민과 연계할 수 있는 새로운 네트워크 등을 구성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에게 특히 지방대학생들에게 단순히 취업에만 목맬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대학생들 간의 교류를 통한 지역공동체에 대한 의식함양이나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정책적으로 증가시킬 방편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학생들은 강의실에서도 꿈틀거려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교수들의 강의평가에 있어 더욱 충실해야 하며 이것이 강의실에 반영되지 않을 경우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또한 대학 외의 일에도 더욱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앞의 보잘 것 없는 생각들보다 대안이나 정책 등은 대학관련 전문가들이 더욱 잘 짜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지역대학만의 '특색'이 없다는 것이다. 지역대학생들이 정말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루빨리 찾고, 지역과 더불어 상생할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지역학문과 함께 도끼자루가 썩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홍상현(대학생, 영남대 법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