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15. 17:01

왜 우리의 관심은 대학입시까지인가/이득재/지금여기 연재 시작

왜 우리의 관심은 대학입시까지인가
[오늘, 대학을 본다 -1]
2009년 06월 14일 (일) 22:39:02 이득재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는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와 함께 오늘날 대학문제를 진단해 보는 기획연재를 마련했습니다.  <프레시안>에서는 비정규교수의 교원지위 회복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벼랑끝 31년 희망없는 강의실>을 연재한 바 있는데, 이번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기획은 대학 전반의 문제를 짚어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대학에 관심을 갖는다. 정확하게 말하여 '자녀의 대학입시까지'입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에서는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면 탈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식사회에서 대학은 교육과정에서 사람을 마지막으로 가다듬고 전문지식을 생산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다시 돌아보아야 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학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대학에서 일하는 사람부터 대학을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대학을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편집자 

 

   
▲ 아이들은 입시지옥을 견디기 위해 매일 밤 독서실에서 잠을 청한다. (사진/손정옥)

아이를 고등학교에 진학시키지 않았다. 고등학교 배정을 받고 예비소집일이 있던 날 전까지 일말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러다 멀쩡한 아이 인생 망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인생의 목표가 스카이대학 입학뿐인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공교육 현장에 보낸다는 것도 한 편으로는 엄청 씁쓸한 기분이 드는 일이었다.

로또 한 장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듯이 어떤 방식으로든 스카이대학 입학 한 방으로 모든 것을 끝내고 마는 이 일차원적인 사회에서 어차피 모든 것이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한 방에 끝내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시키고 그 남는 시간에 정말로 아이에게 공부할 시간, 인생을 즐길 시간, 세상을 탐험할 시간을 주자. 아이들을 교육훈련소가 아니라 입시훈련소에서 사육시킬 일이 아니라 스스로 세상을 겪고 스스로 인생을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러나 그러면서도 나 또한 불확실한 미래에 모험을 거는 것 같아 불안의 그림자가 쫓아다닌다. 나도 결국 배팅하는 것 아닌가. 투기와 모험의 차이는 무엇인가. 내가 선택한 모험도 결국은 계급적인 투기 아닌가.

대한민국 교육은 노동이자 모험 내지 투기일 뿐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전인교육이 아니라 전과목교육일 뿐이고 노동이자 모험 내지는 투기일 뿐이다. 대학이라도 나와야 어디 명함을 내밀고 시집 장가라도 갈 수 있으니 대학을 안 갈 수도 없다. 대학 입학은 학문의 맛을 경험하고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따라지 인생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계급적 선택이다.

어느 대학을 들어가는 가에 따라 성골 진골 그리고 6 두품의 신분이 결정되는 마당에 대학입시에 모든 것을 배팅할 수밖에 없다. 김혜수만이 타짜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자식을 둔 부모들은 모두 김혜수 같은 타짜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사교육비는 말하자면 거대한 교육투기판이 대한민국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의 증거일 뿐이다. 부모의 ‘사랑’으로 교육투기판에 몰린 학생들은 오늘도 수행돌격대원임을 자임하며 입시기계로 성장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특목고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군대식 푸샵을 시키는 대한민국 교육현장은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배팅으로 일거에 일확천금을 거두어들이고 스카이대학에 입학하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 사교육비로 얼마를 투자했든 간에 스카이대학을 졸업해서 그 투자금을 회수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스카이대학을 나오면 투자금 회수 이외에 사회적 자본 같은 부수적인 이득이 엄청 불어난다. 검정고시에서도 이 교육투기열풍은 온존한다. 쉬운 문제가 나오는 검정고시를 악용해 서울대를 들어가는 길을 획책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검정고시든 교육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다.

전교과목 문제풀이 폭식 교육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은 전인교육을 빙자한 전교과목 문제풀이 훈련으로 과식 정도가 아니라 폭식 상태에 이른다. 지식이 아니라 정보의 지나친 섭취로 인해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오면 일거에 지식거식증 환자로 전락한다. 주입식 문제풀이로 인한 정보과식증이 대학에서 지식거식증으로 변하고 대학은 대학대로 지식 섭취를 거부하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과식증을 방치하거나 한 술 더 떠 대학에서 배출시킨다.

지식 섭취를 거부하는 아이들에게 학문의 맛을 느끼는 즐거움 같은 것은 대한민국 대학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토익 점수, 각종 자격증으로 상품의 질만 높이면 그만이다. 대학공시제를 통해 대학생이 아니라 학원수강생을 꽉 꽉 채우면 그만이다. 학생이 아니라 현찰 들고 찾아오는 돈 덩어리들 아니던가!

대학입시, 낙타구멍으로 들어가기 위한 전쟁, 거기까지..

우리의 관심은 딱 여기까지다. 대학 문을 두드리는 순간 계급이 확연하게 나누어지고 스카이대학과 지잡대(지방 잡대학교)로 양분된다. 전 지구적으로 그리고 국내적으로 사회 구조가 허리가 잘룩한 모래시계 형태로 변해 가고 귀족계층이 거주하는 스카이가 점점 더 좁아지는 마당에 너도나도 그 낙타구멍에 들어가기 위한 전쟁을 치른다.

아파트 투기 광풍이라고 하지만 그 광풍이 제대로 빛을 발하려면 무조건 스카이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개성, 인격, 학문 같은 것들은 모두 공염불이고 사치품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의 화신인 영국의 수상 대처가 역사학을 가리켜 사치품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위브 더 제니스’ 같은 두산 건설의 광고 문구처럼 하늘을 찌르는 아파트에서 살자면 아파트 투기 광풍 이전에 교육투기 광풍이 전제되어야 한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이 아니면 그나마라도 스카이대학을 나와 돈과 권력을 거머쥐어야만 성골 진골로서 축구장 같은 아파트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반에 영어 만점이 수십 명 씩 되는 나라, 아차 해서 잠시라도 실수하면 이 등급으로 떨어지고 스카이대학은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간다. 일등급과 이등급 사이의 거리는 절벽보다 더하다. 학생들이 소도 아니고 횡성한우도 아닌데 학생들을 일등품으로 제조해내는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에서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희망이란 단어 자체가 이미 기대할 것이 드물다는 뜻 아니던가.

세계 자본주의가 이미 헐값의 임금으로 학생들을 크리넥스 일회용 노동자로 전락시키고 거기에다가 파견노동, 일용직노동 등 불안정고용을 일삼는 마당인지라 교육을 통해 새로운 계급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 불가피하다. 즉 우리는 지금 교육이 아니라 수능 사인펜을 든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말이다. 하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전쟁을 대리 수행하는 곳이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이다.

일회용 크리넥스 같은 비정규직 교수

이러한 마당에 대학 교육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비정규직 교수들이 크리넥스처럼 일회용 노동자로 전락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비정규직 교수들을 학문을 핑계로 공공근로사업으로 낚아 놓고 스스로가 매트릭스에 걸린 줄을 자각한 비정규직 교수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야만스러운 풍경에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

봄이 왔지만 목련꽃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글 나부랭이나 쓰면서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얼마 전 김 종철 교수가 대학에서 돈과 권력을 불나방처럼 쫓아다니는 무능한 교수들을 내모는 방법으로 교수들 임금 삭감을 주장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백번 공감하는 바이지만, 그 돈으로 다 같이 연대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이미 장터로 변질된 대학에서, 참으로 숨쉬기조차 힘들고 역겹다.
인생의 목적이 대학입시까지이고 아이비리그 대학 내지는 스카이대학 입학까지라니. 사막화로 인해 대한민국을 덮치는 중국의 황사를 바라보면서, 정작 더 두려운 것은 중고등학교 및 고등교육을 포함해 지성의 사막화가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에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이득재(대구가톨릭대학 교수)

 


2009. 6. 13. 21:11

대학교육 문제 해답은 대학 강사 교원신분 회복이 관건

         용산참사 현장 생명평화 미사에 참석한 김영곤, 김동애씨


농성 640일을 이어가는 김동애, 김영곤씨 부부

서울 국회 앞, 작은 천막에서 김동애(소화데레사), 김영곤(고려대 강사)씨가 비정규 대학 강사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640일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 전임교수 6만여 명에 두 배가 넘는 13만5천여 명의 비정규 대학교수들 중 7만여 명은 연평균 990만원 봉급을 받으며 강사생활을 하고 있다.


정규직 교수와 임금차이는 무려 10배, 연구실, 휴게실도 없고 대학교육에 참여할 권리도 없이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바로 비정규 대학 강사들이다. 계약서도 없이 강의를 맡아 달라는 말을 들어야 일할 수 있는 비정규 대학 강사들, 반대로 강의 요청 연락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해고통보가 된다.


이런 대학비정규 강사들의 현실을 정리한 책 <비정규교수 벼랑끝 32년>(김동애외 32인)이 지난 4월 20일 출간되기도 했다. "대학 강사가 법적으로 교원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하는 김동애(소화데레사)씨는 이 싸움을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정규 대학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위한 법 개정 발의는 2004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을 시작으로, 2006년 열린우리당, 2007년 한나라당, 지난 대선을 앞두고도 공약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대학들의 로비에 밀려 결국 책임은 교육부로 미뤄지고 법안은 슬그머니 폐기되고 있다. 김영곤 씨는 "교육권 없는 강사의 불안한 신분 때문에 부실 교육 등 학생에게 피해가 간다"고 설명한다. "주요 대학재단을 재벌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당국의 통제를 받는 강사는 재벌 입맛에 맞는 교육만 하게 된다. 사회비판적 창의성 있는 교육이 아니라 암기위주로 대학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철학에서 '국가보안법', 경제에서는 '분배와 내수', IT관련학과에서는 '인터넷 실명제' 등이 다뤄지지 못한다" 고 지적했다. 김영곤씨에 따르면, 사회 비판적 강의를 못하는 대학강사 문제는 결과적으로 학문을 죽게 만들고, 유능한 학생들이 로스쿨과 치의학 전문대학원으로 몰리게 하는데 "교육권 없는 대학비정규 강사 문제는 학생의 학습권, 학문의 문제이며,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한다.


김영곤, 김동애씨가 640일 농성을 이어오고 있지만 소속노조(한국비정규교수노조)의 지원이 미흡하다. 한국비정규교수 노동조합측은 2007년 12월 이후부터 2009년 3월까지 년 예산 2,000만원을 지원하지 않았고 이들은 개인 빚을 내 농성을 이어왔다.


결국 노조 측에서 지원한 500만원과 개인후원 등으로 빚을 정리한 상태다. 김동애 씨는 "노조가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부실 교육 피해자인 학생, 학부모와 함께 '대학 강사 교원신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를 구성해 싸움을 이어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곤 씨는 "교수노조,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대학교육연구소 등이 법 개정 싸움을 방해하는 흐름에 편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이 글은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에도 실렸습니다.

            농성장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