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5. 18:46

[민주공화국-장기농성장]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10년의 싸움...

[민주공화국-장기농성장]시간강사 처우개선 위한 10년의 싸움, 시간강사법은 "노예해방"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지난 8월 1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국민은행 앞에 위치한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의 모습. / 최민지 기자

지난 8월 1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국민은행 앞에 위치한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의 모습. / 최민지 기자

지난 8월 1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국민은행 앞.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 농성장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본부장 김동애씨(69)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미안한 목소리로 “새벽 5시 차 타고 광주에 내려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광주고법은 조선대 시간강사였던 고(故) 서정민씨의 가족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진행중인 곳이다. 서씨(당시 45세)는 2010년 지도교수의 논문대필 강요와 임용비리를 주장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저녁 김동애·김영곤씨 부부가 서울에 돌아오면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 8시, 농성장을 다시 찾았다. 가로등 밑에 위치한 농성장은 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농성장 안에 들어섰다. 1.5평 남짓한 공간 안은 정수기와 냉장고, 밥상 등 살림살이로 가득했다. 달달달 돌아가는 A4용지 크기의 선풍기 두 대가 여름밤 더위를 쫓아냈다. 돗자리 위에는 개미 여러 마리가 기어다녔지만 남편 김영곤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신문을 읽어 나갔다. 직접 전구에 줄을 매달아 만든 스탠드는 신문 읽기에 충분했다. 온갖 살림살이로 가득한 이곳은 김동애씨가 대표로 있는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다. 김동애씨와 남편 김영곤씨는 2007년 9월 이 농성장을 설치하고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10년째 변함없이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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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김동애씨는 장기농성을 두고 “끊임없이 양파껍질 벗기듯 자기 자신을 버리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10년을 버티냐 하는데, 우리에겐 매일매일 시시각각으로 사건이 일어나요. 하루하루가 치열하고 처절한 싸움인거죠. 장기농성 하는 사람들은 여유로울 것 같지만 결코 여유롭지 못해요. 여름엔 아침에 문을 닫고 나오면 그 열이 50도까지 올라가거든요. 그 더위랑 싸워야지 다른 정신이 없어요. 하루하루를 끊임없이 싸워야 할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10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장기농성하는 사람들의 제일 어려움이 잊혀지고 있다는 거예요. 어떤 문제가 일어나잖아요. 그럼 더 큰 문제가 일어나서 그 문제를 덮어버려요. 예를 들어 용산참사가 일어나면 그걸 쌍용이 덮고 그걸 세월호가 덮고 하는 식이에요. 그게 현안이니까 다들 다 그리로 가죠. 안 갈 수가 없죠. 점점 무지막지 하니까요. 정권이나 자본들이 갈수록 포악해지거든요.”

2008년 3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천막농성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동애씨의 모습  /강윤중기자

2008년 3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천막농성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동애씨의 모습 /강윤중기자

■ 또 미뤄진 시간강사법…시간강사법 제정은 “노예해방”

전국의 대학시간강사는 지난해 4월말 기준 약 5만 9000여명에 이른다. 그들 대부분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고 일한다. 교육부가 지난 7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학 시간강사들의 평균연봉은 811만이었다. 김동애씨는 정규직 교수와 시간강사들의 비정상적인 급여 차이를 지적했다. “강사들 일년 연봉이 400~500만원이에요. 강의도 많이 안 주고. 근데 정규직 교수되면 평균 연봉이 1억이거든요. 그 차는 엄청나죠. 어떻게 하든 정년퇴직하는 날까지도 정규직 교수 하겠다는 마음으로 엎드려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정규직 교수들은 강사를 천민 집단으로 보는 거죠. 본인도 얼마 전까지 강사로 있던 사람이 더더욱. 지식인들이 자기 내던지면서 비정규직 얘기 안 하는 겁니다. 진보적인 교수들이 깔짝깔짝 한 두마디 해주는 정도지. 이제는 다 비정규직이잖아요. 집단으로 항의하고 이런 거 없잖아요. 대학에서도 학생들이 졸업하면 대부분 비정규직이에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런 얘길 안 하지. 눈을 가려서 세상 모르게 만드는거죠.”

지난해 12월, 국회는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인정 등 처우개선을 골자로 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시간강사법)을 유예시켰다. 3번째 유예였다. 2010년 조선대 시간강사 자살 이후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을 위해 제정된 이 법은 원래대로라면 2016년부터 시행해야 했다. 오랜 세월 학수고대했던 법안이 2년 더 미뤄지자 김씨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너무 놀란 게 강사법 시행 유예하자고 할 때 200명이 찬성한 거예요. 너무 당황스럽고 화가 났어요. 통과시킬 때 반란표 나올까봐서 그랬는지 여러가지 통과시킬 법안 중에 순서를 1번으로 해놨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새누리당 앞에 램프 켜놓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어요. 교원 자격 인정 안해주려고 그러는 거냐고요. 내가 10년을 어떻게 싸웠는데 또 유예냐. 내 나이 칠십인데 내가 덥고 춥고 이런 걸 몰라서 이렇게 살겠냐고 길바닥에서. 누군 집에서 편하게 있을 줄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아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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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애씨는 대학강사집단에 대해 ‘모래알’이라고 표현했다. “생산직 노동자들은 현장이 같이 있잖아요. 같이 협력해서 물건을 만들고요. 근데 강사들은 혼자 강의실 들어가서 강의하고 혼자 연구해요. 현장 자체가 같이 어울려서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모래알 같아요. 지식인들의 특성이라는 것도 있고요. 그런데도 이 문제는 해결해야 해요. 우리가 주장하는 건 교원, 그러니까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신분을 찾으려는 거예요. 노예해방 같은 거죠. 우리는 다 21세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해를 못해요. 우리가 주장하는 1년 계약, 4대보험, 퇴직금 이런 건 사실 근로기준법 수준이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이해시키기도 어렵고 연대도 어렵고요. 이 문제는 강사 당사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학습권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이화여대 보세요. 소통이 가능하냐고요. 밀어부치는 거죠. 정권에 자본에 교육이 본래의 목적을 상실했어요. 이대 교수가 학생들한테‘너희들이 무슨 주인이야 4년 있다 졸업하는데’ 라고했잖아요. 그게 단적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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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국회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동애·김영곤 부부의 모습/김정근 기자

지난 2010년 국회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동애·김영곤 부부의 모습/김정근 기자

■“사람들이 연예인 스케줄이라고 하더라고요”

3000일 넘게 이어진 투쟁이지만 김씨 부부는 여전히 매일매일이 바쁘다. 김동애씨는 농성장의 하루 일과를 이렇게 소개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필요한 문건을 쓴다든지 하루 준비를 해요. 그 다음에 점심 때는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요. 오후에는 연대를 가죠. 고려대에도 텐트가 있어요. 작년부터는 광주도 다니고요. 광주에서는 고법 가고 조선대 가고. 원래는 1주일에 한번씩 가고 그랬다가 경비 문제도 있고 해서 2주에 1번 가기도 했다가 최근에는 1주일에 한 번씩 가고요. 또 상명대 가고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도 가요. 앰프 틀고 시위하는 거죠. 대교협 사무실이 건물 22층에 있거든요. 들릴 리가 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거예요. 오후에는 여기저기 1인 시위하거나 집회를 가거나. 월요일에는 광화문에 시국 미사 하기 전에 1인 시위 하고요. 사람들이 연예인 스케줄이라고 하더라고요.”

길 위에서 보낸 10년의 시간은 건강했던 몸도 해쳤다. 김씨는 요즘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한다. 그는 “몸이 안 좋을 땐 무조건 쉬어요. 농성장에 박혀 있는 거예요. 갑산성기능저하증이 있어서 그 약도 먹어요. 근처 한의원 다니고 다른 병원은 안 가요”라고 말했다. 병원에 안 가는 이유를 묻자 김씨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디 고장 났다 그러면 농성 그만둬야 하잖아. 언제 한 번은 병원에서 입원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근데 안 했어. 농성 못하니까”

지난 8월 26일은 김동애씨의 칠순 생일이었다. 농성장에서 맞는 9번째 생일이다. / 정지윤 기자

지난 8월 26일은 김동애씨의 칠순 생일이었다. 농성장에서 맞는 9번째 생일이다. / 정지윤 기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김동애씨는 “10년동안 우리 농성장 생활도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처음 몇 달은 전기가 없었어요. 근데 너무 불편하더라고. 국민은행에서 끌어다 쓰다가 얼마 안 있어서 끊어버리고. 지금은 농성장 앞 가판대랑 나눠 써요. 전기세도 나눠 내고요. 하루에도 옷을 서너번 갈아입을 정도로 더운데 전기가 없으면 못 살지. 10년 있다 보니 더위는 어떻게 피하고 추위는 어떻게 피하고 노하우가 생겨. 야만시대도 살았는데 지금이라고 못 살라고. 다 요령이 알아져요.”

에어컨이 없는 농성장에서 여름나기는 여전히 힘든 일 중 하나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시원하게 씻어내릴 샤워시설이 농성장엔 없다. “지금은 습관이 돼서 괜찮은데 처음에는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고요. 물 한 통 받아다가 하루를 쓰는 거예요. 국민은행 화장실에서 씻고 세수하고 하는 거 머리감고 물수건 해가지고 몸 닦고 그러고 살아요. 집에 가서 목욕하고. 제가 보기보다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이라서 목욕탕 같은 데를 못 가요. 사람들이 처음에는 찜질방 가라고 했어요. 근데 못하겠더라고요.”

김씨 부부는 6년 전 고향인 충청남도 당진으로 내려갔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부부는 주말이면 농성장을 떠나 당진 집으로 내려간다. 물론 집에 간다고 해서 푹 쉴 수 있는 건 아니다. 주중 5일간의 농성을 이어가려면 주말내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주말 동안 집에서 일주일치 반찬을 해와서 밥만 여기서 해먹어요. 밥 사먹으면 감당이 안돼요 그리고 조미료 같은 거 많이 들어가니까 병이 나요. 주말에 가서 빨래도 하고 옷을 깨끗이 입어야 돼요 안그럼 병나요. 옷을 한보따리씩 갖고 와서 빨아요. 그러니까 주말은 쉴 수가 없어요. 가서 농사를 짓고 꽃도 기르고요. 꽃을 길러서 분재를 하는 건 아니고 1년 중에 봄에는 봄꽃, 여름엔 여름꽃. 그게 나름의 취미생활 하는 거예요. 고구마도 심고 마늘고 심고요. 또 집에 가면 황토방에서 나무 때고 사는데 그게 경제적으로 절약이 되고 몸에도 좋고요. 시골에선 난방비 감당 못해요. 우리가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해. 기름값은 어떻게 대고. 근데 결과적으로 몸에는 좋더라고. 겨울에는 주변에 나무하는 게 일이에요. 주말에 집에 가서 불 때고 자면 이 노독이 풀려요.”

농성장 안 작은 테이블 위에서 각자 작업을 하고 있는 김동애·김영곤 부부 /정지윤 기자

농성장 안 작은 테이블 위에서 각자 작업을 하고 있는 김동애·김영곤 부부 /정지윤 기자

■ “꼭 해야되는 일이니까요”

10년이나 싸움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돌아온 건 역질문이었다. “제 얘기 들어보니까 교원 지위를 회복시켜야 돼요 아니에요? 해야될 것 같죠? 꼭 해야되는 일이니까 하는 거예요. 그게 언제될 진 모르지만. 장노년을 보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실제로 보내고 있고요. 인생 큰 토막 하나를 보낼만큼 가치가 있는 일인가. 하는 데까지 하는 거예요.”

‘연대’ 또한 중요한 동력 중 하나다. 다른 농성자들과의 연대는 김씨 부부의 일과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콜트콜텍 문제든 우리 문제든 본질은 같아요. 자본과 싸우는 거거든. 연대하지 않고 그 거대한 자본이랑 어떻게 싸울 수 있겠어요? 이영이 선생님(상명대에서 강의하다 연구비유용 등 지적한 뒤에 강의 폐강 통보받은 시간 강사) 보면 알겠지만 젊은 날에 3년을 길에 있어도 누가 연대 해주나요? 진짜 연대해줘야 할 진보적인 교수들이 그만 싸우라고 해요. 처음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왔을 때 나도 여력이 없다고 했어요. 근데 지금 같이 일주일에 한 번 상명대 가거든요. 그러니까 본인 표정이 훨씬 밝아지는 거예요. 이미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편해지잖아요. 혼자 어떻게 싸워요. 우리도 우리 둘만 보이죠? 하지만 전국이 강사들이 다 마음으로 돕고 있는 거예요. 서정민 선생님도 유서에 내 이름을 콕 집어서 적어놨더라고요 도와달라고. 우리는 바빠서 우리가 한 일 다 잊어버려요. 그런데 그분들은 우리를 보고 있다는 거예요. 늘 하는 얘기가 뒤에 가서 머릿수만 채워주자는 거예요. 그럼 힘이 되잖아요. 그게 연대에요.”

부부는 주말이면 충남 당진의 집으로 내려간다. 쉴틈없이 빨래를 하고 밑반찬을 만들어야 또 한주의 농성을 준비할 수 있다./ 정지윤 기자

부부는 주말이면 충남 당진의 집으로 내려간다. 쉴틈없이 빨래를 하고 밑반찬을 만들어야 또 한주의 농성을 준비할 수 있다./ 정지윤 기자

지난 9월 7일 주말을 맞아 충남 당진의 집에 내려간 김영곤씨가 농사일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지난 9월 7일 주말을 맞아 충남 당진의 집에 내려간 김영곤씨가 농사일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 “민주공화국? 같이 밥 먹어야죠”

김동애씨에게 대한민국은 “목소리를 내면 배척당하는 나라”다. 김씨는 “우리는 나이가 많아서 거의 포기했어요. 욕망이나 출세나 명예나 이런 것들 있잖아요. 왜냐하면 소외 시키거든요. 나는 어딜가도 절대로 적극적으로 어떤 집단 속에 뛰어들지 않아요. 왕따 당할 걸 뻔히 아니까. 내가 생각하는 원칙을 주장하잖아요? 그럼 공격이 들어와요. 우리나라에선 자기 목소리를 가져선 안 돼요. 가지면 그 날로 그 집단에서 왕따당하는 거예요. 난 역사를 배웠고 옳고 그름을 생각하면서 살아왔어요. 근데 옳고 그름 조차도 얘기하면 안되는 나라에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1조에 대해 물었다. 단박에 “민주공화국을 만들어야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쪽(정교수)은 똑같이 가르치는데 1억을 한쪽은 교원 신분도 없고 연봉 500만~600만원 받아요. 그게 민주에요? 그게 공화국이에요? 김제동이 공화는 밥을 같이 먹는 거라고 했는데 이게 밥을 어떻게 같이 먹는 거예요? 같이 안 먹는 거죠. 논문 대필 시키고 그걸 관행이라고 하는 나라가 어떻게 민주공화국이냐고요. 절대 아니에요.”

김씨는 민주공화국에선 모두가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이 밥 먹어야죠. 한쪽은 시급으로 사는데 대학 교수들이 내 밥그릇 내 파이가 작아질까봐 막고 있어요. 그게 무슨 민주고 같이 먹는 거예요? 노예고 종이고 개처럼 살고 있는데 학생들은 그걸 모르고 언론은 감추고요. 이것부터 바로 잡아질 때 민주공화국이 되는 거예요. 대학은 사람을 가르치는 곳이잖아. 학생들이 주인의식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민주공화국이 되는 거예요. 그래야 밖에 나가서도 정치적 현안에 대해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지금은 내 자신의 권리도 찾지 못하잖아요. 내가 맨날 하는 얘기가 있는데 대학이 400개의 세월호라는 거예요. 학생들이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어야 되는 줄 알아요.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여러가지 있잖아요 인생이 취직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지금 현재 대학은 학생들을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바보로 만들고 있어요. 그 모순을 만들어낸 것이 강사의 교원지위가 없는 거예요.”

2010년 국회 앞 천막농성 1000일째를 맞은 부부의 모습.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농성장의 모습도 바뀌었다./ 김문석 기자

2010년 국회 앞 천막농성 1000일째를 맞은 부부의 모습.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농성장의 모습도 바뀌었다./ 김문석 기자

■목표는 ‘68혁명’

부부의 목표는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자 김동애씨는 막힘없이 “우리 목표는 68혁명”이라고 대답했다. 68혁명이란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회변혁운동이다. 대학생과 노동자가 권위주의와 보수적인 사회체제 에 반대하며 주도했고 프랑스 사회 부조리를 변혁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씨는 “한국사회가 산업화를 거쳐 지금 필리핀으로 가고 있어요. 세계적으로 강사들 교원 지위를 인정 안 하는 나라가 몇 없는데 그 중 하나가 필리핀이에요. 이걸 북유럽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김동애씨는 다시 한 번 서정민 교수 이야기를 꺼냈다. “경향신문에 인권상 받은 기자 있잖아요. 강진구 기자. 그 분한테 얘기 좀 해주세요. 전남대 서정민 교수 재판 관련해서 기사 좀 써달라고. 이거 사람 하나 살리는 일이에요. 강기자님이 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어요.”

김동애씨는 인터뷰 내내 “시간강사 문제를 노동문제로만 바라보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언론에서 시간강사들 이야기를 조금 다루긴 하지만 너무 노동문제에만 초점을 맞춰요. 강사들은 그냥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교육을 하고 또 학생들 지도를 하고 연구도 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해달라는 거예요. 언론에서 이 시간강사 문제를 너무 불쌍하게만 다룬다는 거죠. 불쌍한 사람들로만 봐요. 기사에 한 줄이라도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시간강사도 교육자라고요.”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210100&artid=201610051300001#csidxb546b8449799a94b18a36f718ce01f9

[민주공화국-장기농성장]시간강사 처우개선 위한 10년의 싸움, 시간강사법은 "노예해방"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지난 8월 1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국민은행 앞에 위치한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의 모습. / 최민지 기자

지난 8월 1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국민은행 앞에 위치한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의 모습. / 최민지 기자

지난 8월 1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국민은행 앞.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 농성장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본부장 김동애씨(69)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미안한 목소리로 “새벽 5시 차 타고 광주에 내려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광주고법은 조선대 시간강사였던 고(故) 서정민씨의 가족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진행중인 곳이다. 서씨(당시 45세)는 2010년 지도교수의 논문대필 강요와 임용비리를 주장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저녁 김동애·김영곤씨 부부가 서울에 돌아오면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 8시, 농성장을 다시 찾았다. 가로등 밑에 위치한 농성장은 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농성장 안에 들어섰다. 1.5평 남짓한 공간 안은 정수기와 냉장고, 밥상 등 살림살이로 가득했다. 달달달 돌아가는 A4용지 크기의 선풍기 두 대가 여름밤 더위를 쫓아냈다. 돗자리 위에는 개미 여러 마리가 기어다녔지만 남편 김영곤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신문을 읽어 나갔다. 직접 전구에 줄을 매달아 만든 스탠드는 신문 읽기에 충분했다. 온갖 살림살이로 가득한 이곳은 김동애씨가 대표로 있는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다. 김동애씨와 남편 김영곤씨는 2007년 9월 이 농성장을 설치하고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10년째 변함없이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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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애씨는 장기농성을 두고 “끊임없이 양파껍질 벗기듯 자기 자신을 버리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10년을 버티냐 하는데, 우리에겐 매일매일 시시각각으로 사건이 일어나요. 하루하루가 치열하고 처절한 싸움인거죠. 장기농성 하는 사람들은 여유로울 것 같지만 결코 여유롭지 못해요. 여름엔 아침에 문을 닫고 나오면 그 열이 50도까지 올라가거든요. 그 더위랑 싸워야지 다른 정신이 없어요. 하루하루를 끊임없이 싸워야 할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10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장기농성하는 사람들의 제일 어려움이 잊혀지고 있다는 거예요. 어떤 문제가 일어나잖아요. 그럼 더 큰 문제가 일어나서 그 문제를 덮어버려요. 예를 들어 용산참사가 일어나면 그걸 쌍용이 덮고 그걸 세월호가 덮고 하는 식이에요. 그게 현안이니까 다들 다 그리로 가죠. 안 갈 수가 없죠. 점점 무지막지 하니까요. 정권이나 자본들이 갈수록 포악해지거든요.”

2008년 3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천막농성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동애씨의 모습  /강윤중기자

2008년 3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천막농성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동애씨의 모습 /강윤중기자

■ 또 미뤄진 시간강사법…시간강사법 제정은 “노예해방”

전국의 대학시간강사는 지난해 4월말 기준 약 5만 9000여명에 이른다. 그들 대부분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고 일한다. 교육부가 지난 7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학 시간강사들의 평균연봉은 811만이었다. 김동애씨는 정규직 교수와 시간강사들의 비정상적인 급여 차이를 지적했다. “강사들 일년 연봉이 400~500만원이에요. 강의도 많이 안 주고. 근데 정규직 교수되면 평균 연봉이 1억이거든요. 그 차는 엄청나죠. 어떻게 하든 정년퇴직하는 날까지도 정규직 교수 하겠다는 마음으로 엎드려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정규직 교수들은 강사를 천민 집단으로 보는 거죠. 본인도 얼마 전까지 강사로 있던 사람이 더더욱. 지식인들이 자기 내던지면서 비정규직 얘기 안 하는 겁니다. 진보적인 교수들이 깔짝깔짝 한 두마디 해주는 정도지. 이제는 다 비정규직이잖아요. 집단으로 항의하고 이런 거 없잖아요. 대학에서도 학생들이 졸업하면 대부분 비정규직이에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런 얘길 안 하지. 눈을 가려서 세상 모르게 만드는거죠.”

지난해 12월, 국회는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인정 등 처우개선을 골자로 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시간강사법)을 유예시켰다. 3번째 유예였다. 2010년 조선대 시간강사 자살 이후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을 위해 제정된 이 법은 원래대로라면 2016년부터 시행해야 했다. 오랜 세월 학수고대했던 법안이 2년 더 미뤄지자 김씨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너무 놀란 게 강사법 시행 유예하자고 할 때 200명이 찬성한 거예요. 너무 당황스럽고 화가 났어요. 통과시킬 때 반란표 나올까봐서 그랬는지 여러가지 통과시킬 법안 중에 순서를 1번으로 해놨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새누리당 앞에 램프 켜놓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어요. 교원 자격 인정 안해주려고 그러는 거냐고요. 내가 10년을 어떻게 싸웠는데 또 유예냐. 내 나이 칠십인데 내가 덥고 춥고 이런 걸 몰라서 이렇게 살겠냐고 길바닥에서. 누군 집에서 편하게 있을 줄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아냐고요.”

▶ [관련기사] 교과부 ‘시간강사 자살’ 계기 처우개선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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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애씨는 대학강사집단에 대해 ‘모래알’이라고 표현했다. “생산직 노동자들은 현장이 같이 있잖아요. 같이 협력해서 물건을 만들고요. 근데 강사들은 혼자 강의실 들어가서 강의하고 혼자 연구해요. 현장 자체가 같이 어울려서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모래알 같아요. 지식인들의 특성이라는 것도 있고요. 그런데도 이 문제는 해결해야 해요. 우리가 주장하는 건 교원, 그러니까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신분을 찾으려는 거예요. 노예해방 같은 거죠. 우리는 다 21세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해를 못해요. 우리가 주장하는 1년 계약, 4대보험, 퇴직금 이런 건 사실 근로기준법 수준이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이해시키기도 어렵고 연대도 어렵고요. 이 문제는 강사 당사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학습권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이화여대 보세요. 소통이 가능하냐고요. 밀어부치는 거죠. 정권에 자본에 교육이 본래의 목적을 상실했어요. 이대 교수가 학생들한테‘너희들이 무슨 주인이야 4년 있다 졸업하는데’ 라고했잖아요. 그게 단적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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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국회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동애·김영곤 부부의 모습/김정근 기자

지난 2010년 국회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동애·김영곤 부부의 모습/김정근 기자

■“사람들이 연예인 스케줄이라고 하더라고요”

3000일 넘게 이어진 투쟁이지만 김씨 부부는 여전히 매일매일이 바쁘다. 김동애씨는 농성장의 하루 일과를 이렇게 소개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필요한 문건을 쓴다든지 하루 준비를 해요. 그 다음에 점심 때는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요. 오후에는 연대를 가죠. 고려대에도 텐트가 있어요. 작년부터는 광주도 다니고요. 광주에서는 고법 가고 조선대 가고. 원래는 1주일에 한번씩 가고 그랬다가 경비 문제도 있고 해서 2주에 1번 가기도 했다가 최근에는 1주일에 한 번씩 가고요. 또 상명대 가고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도 가요. 앰프 틀고 시위하는 거죠. 대교협 사무실이 건물 22층에 있거든요. 들릴 리가 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거예요. 오후에는 여기저기 1인 시위하거나 집회를 가거나. 월요일에는 광화문에 시국 미사 하기 전에 1인 시위 하고요. 사람들이 연예인 스케줄이라고 하더라고요.”

길 위에서 보낸 10년의 시간은 건강했던 몸도 해쳤다. 김씨는 요즘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한다. 그는 “몸이 안 좋을 땐 무조건 쉬어요. 농성장에 박혀 있는 거예요. 갑산성기능저하증이 있어서 그 약도 먹어요. 근처 한의원 다니고 다른 병원은 안 가요”라고 말했다. 병원에 안 가는 이유를 묻자 김씨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디 고장 났다 그러면 농성 그만둬야 하잖아. 언제 한 번은 병원에서 입원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근데 안 했어. 농성 못하니까”

지난 8월 26일은 김동애씨의 칠순 생일이었다. 농성장에서 맞는 9번째 생일이다. / 정지윤 기자

지난 8월 26일은 김동애씨의 칠순 생일이었다. 농성장에서 맞는 9번째 생일이다. / 정지윤 기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김동애씨는 “10년동안 우리 농성장 생활도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처음 몇 달은 전기가 없었어요. 근데 너무 불편하더라고. 국민은행에서 끌어다 쓰다가 얼마 안 있어서 끊어버리고. 지금은 농성장 앞 가판대랑 나눠 써요. 전기세도 나눠 내고요. 하루에도 옷을 서너번 갈아입을 정도로 더운데 전기가 없으면 못 살지. 10년 있다 보니 더위는 어떻게 피하고 추위는 어떻게 피하고 노하우가 생겨. 야만시대도 살았는데 지금이라고 못 살라고. 다 요령이 알아져요.”

에어컨이 없는 농성장에서 여름나기는 여전히 힘든 일 중 하나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시원하게 씻어내릴 샤워시설이 농성장엔 없다. “지금은 습관이 돼서 괜찮은데 처음에는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고요. 물 한 통 받아다가 하루를 쓰는 거예요. 국민은행 화장실에서 씻고 세수하고 하는 거 머리감고 물수건 해가지고 몸 닦고 그러고 살아요. 집에 가서 목욕하고. 제가 보기보다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이라서 목욕탕 같은 데를 못 가요. 사람들이 처음에는 찜질방 가라고 했어요. 근데 못하겠더라고요.”

김씨 부부는 6년 전 고향인 충청남도 당진으로 내려갔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부부는 주말이면 농성장을 떠나 당진 집으로 내려간다. 물론 집에 간다고 해서 푹 쉴 수 있는 건 아니다. 주중 5일간의 농성을 이어가려면 주말내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주말 동안 집에서 일주일치 반찬을 해와서 밥만 여기서 해먹어요. 밥 사먹으면 감당이 안돼요 그리고 조미료 같은 거 많이 들어가니까 병이 나요. 주말에 가서 빨래도 하고 옷을 깨끗이 입어야 돼요 안그럼 병나요. 옷을 한보따리씩 갖고 와서 빨아요. 그러니까 주말은 쉴 수가 없어요. 가서 농사를 짓고 꽃도 기르고요. 꽃을 길러서 분재를 하는 건 아니고 1년 중에 봄에는 봄꽃, 여름엔 여름꽃. 그게 나름의 취미생활 하는 거예요. 고구마도 심고 마늘고 심고요. 또 집에 가면 황토방에서 나무 때고 사는데 그게 경제적으로 절약이 되고 몸에도 좋고요. 시골에선 난방비 감당 못해요. 우리가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해. 기름값은 어떻게 대고. 근데 결과적으로 몸에는 좋더라고. 겨울에는 주변에 나무하는 게 일이에요. 주말에 집에 가서 불 때고 자면 이 노독이 풀려요.”

농성장 안 작은 테이블 위에서 각자 작업을 하고 있는 김동애·김영곤 부부 /정지윤 기자

농성장 안 작은 테이블 위에서 각자 작업을 하고 있는 김동애·김영곤 부부 /정지윤 기자

■ “꼭 해야되는 일이니까요”

10년이나 싸움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돌아온 건 역질문이었다. “제 얘기 들어보니까 교원 지위를 회복시켜야 돼요 아니에요? 해야될 것 같죠? 꼭 해야되는 일이니까 하는 거예요. 그게 언제될 진 모르지만. 장노년을 보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실제로 보내고 있고요. 인생 큰 토막 하나를 보낼만큼 가치가 있는 일인가. 하는 데까지 하는 거예요.”

‘연대’ 또한 중요한 동력 중 하나다. 다른 농성자들과의 연대는 김씨 부부의 일과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콜트콜텍 문제든 우리 문제든 본질은 같아요. 자본과 싸우는 거거든. 연대하지 않고 그 거대한 자본이랑 어떻게 싸울 수 있겠어요? 이영이 선생님(상명대에서 강의하다 연구비유용 등 지적한 뒤에 강의 폐강 통보받은 시간 강사) 보면 알겠지만 젊은 날에 3년을 길에 있어도 누가 연대 해주나요? 진짜 연대해줘야 할 진보적인 교수들이 그만 싸우라고 해요. 처음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왔을 때 나도 여력이 없다고 했어요. 근데 지금 같이 일주일에 한 번 상명대 가거든요. 그러니까 본인 표정이 훨씬 밝아지는 거예요. 이미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편해지잖아요. 혼자 어떻게 싸워요. 우리도 우리 둘만 보이죠? 하지만 전국이 강사들이 다 마음으로 돕고 있는 거예요. 서정민 선생님도 유서에 내 이름을 콕 집어서 적어놨더라고요 도와달라고. 우리는 바빠서 우리가 한 일 다 잊어버려요. 그런데 그분들은 우리를 보고 있다는 거예요. 늘 하는 얘기가 뒤에 가서 머릿수만 채워주자는 거예요. 그럼 힘이 되잖아요. 그게 연대에요.”

부부는 주말이면 충남 당진의 집으로 내려간다. 쉴틈없이 빨래를 하고 밑반찬을 만들어야 또 한주의 농성을 준비할 수 있다./ 정지윤 기자

부부는 주말이면 충남 당진의 집으로 내려간다. 쉴틈없이 빨래를 하고 밑반찬을 만들어야 또 한주의 농성을 준비할 수 있다./ 정지윤 기자

지난 9월 7일 주말을 맞아 충남 당진의 집에 내려간 김영곤씨가 농사일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지난 9월 7일 주말을 맞아 충남 당진의 집에 내려간 김영곤씨가 농사일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 “민주공화국? 같이 밥 먹어야죠”

김동애씨에게 대한민국은 “목소리를 내면 배척당하는 나라”다. 김씨는 “우리는 나이가 많아서 거의 포기했어요. 욕망이나 출세나 명예나 이런 것들 있잖아요. 왜냐하면 소외 시키거든요. 나는 어딜가도 절대로 적극적으로 어떤 집단 속에 뛰어들지 않아요. 왕따 당할 걸 뻔히 아니까. 내가 생각하는 원칙을 주장하잖아요? 그럼 공격이 들어와요. 우리나라에선 자기 목소리를 가져선 안 돼요. 가지면 그 날로 그 집단에서 왕따당하는 거예요. 난 역사를 배웠고 옳고 그름을 생각하면서 살아왔어요. 근데 옳고 그름 조차도 얘기하면 안되는 나라에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1조에 대해 물었다. 단박에 “민주공화국을 만들어야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쪽(정교수)은 똑같이 가르치는데 1억을 한쪽은 교원 신분도 없고 연봉 500만~600만원 받아요. 그게 민주에요? 그게 공화국이에요? 김제동이 공화는 밥을 같이 먹는 거라고 했는데 이게 밥을 어떻게 같이 먹는 거예요? 같이 안 먹는 거죠. 논문 대필 시키고 그걸 관행이라고 하는 나라가 어떻게 민주공화국이냐고요. 절대 아니에요.”

김씨는 민주공화국에선 모두가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이 밥 먹어야죠. 한쪽은 시급으로 사는데 대학 교수들이 내 밥그릇 내 파이가 작아질까봐 막고 있어요. 그게 무슨 민주고 같이 먹는 거예요? 노예고 종이고 개처럼 살고 있는데 학생들은 그걸 모르고 언론은 감추고요. 이것부터 바로 잡아질 때 민주공화국이 되는 거예요. 대학은 사람을 가르치는 곳이잖아. 학생들이 주인의식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민주공화국이 되는 거예요. 그래야 밖에 나가서도 정치적 현안에 대해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지금은 내 자신의 권리도 찾지 못하잖아요. 내가 맨날 하는 얘기가 있는데 대학이 400개의 세월호라는 거예요. 학생들이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어야 되는 줄 알아요.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여러가지 있잖아요 인생이 취직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지금 현재 대학은 학생들을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바보로 만들고 있어요. 그 모순을 만들어낸 것이 강사의 교원지위가 없는 거예요.”

2010년 국회 앞 천막농성 1000일째를 맞은 부부의 모습.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농성장의 모습도 바뀌었다./ 김문석 기자

2010년 국회 앞 천막농성 1000일째를 맞은 부부의 모습.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농성장의 모습도 바뀌었다./ 김문석 기자

■목표는 ‘68혁명’

부부의 목표는 무엇일까. 질문을 던지자 김동애씨는 막힘없이 “우리 목표는 68혁명”이라고 대답했다. 68혁명이란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회변혁운동이다. 대학생과 노동자가 권위주의와 보수적인 사회체제 에 반대하며 주도했고 프랑스 사회 부조리를 변혁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씨는 “한국사회가 산업화를 거쳐 지금 필리핀으로 가고 있어요. 세계적으로 강사들 교원 지위를 인정 안 하는 나라가 몇 없는데 그 중 하나가 필리핀이에요. 이걸 북유럽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김동애씨는 다시 한 번 서정민 교수 이야기를 꺼냈다. “경향신문에 인권상 받은 기자 있잖아요. 강진구 기자. 그 분한테 얘기 좀 해주세요. 전남대 서정민 교수 재판 관련해서 기사 좀 써달라고. 이거 사람 하나 살리는 일이에요. 강기자님이 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어요.”

김동애씨는 인터뷰 내내 “시간강사 문제를 노동문제로만 바라보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언론에서 시간강사들 이야기를 조금 다루긴 하지만 너무 노동문제에만 초점을 맞춰요. 강사들은 그냥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교육을 하고 또 학생들 지도를 하고 연구도 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해달라는 거예요. 언론에서 이 시간강사 문제를 너무 불쌍하게만 다룬다는 거죠. 불쌍한 사람들로만 봐요. 기사에 한 줄이라도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시간강사도 교육자라고요.”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210100&artid=201610051300001#csidxb546b8449799a94b18a36f718ce01f9

[민주공화국-장기농성장]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10년의 싸움...시간강사법은 "노예해방"

경향신문 최민지 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210100&artid=201610051300001

2016. 9. 14. 00:09

[인터뷰 033] 우민화(愚民化) 한국 대학, 10년째 국회 앞 노숙농성 대학강사.

[인터뷰 033] 우민화(愚民化) 한국 대학, 10년째 국회 앞 노숙농성 대학강사.
http://www.podbbang.com/ch/11649
김영곤 선생님 (전국대학강사노조 고려대 분회장 )
1:12:36

2016. 9. 11. 01:18

교원 지위 주고 1년 미만 채용은 허용..대학강사들 "강사법 오히려 후퇴" 반발 한국일보|남보라

교원 지위 주고 1년 미만 채용은 허용..대학강사들 "강사법 오히려 후퇴" 반발 한국일보|남보라
입력 16.09.09. 20:02 (수정 16.09.09.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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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단체 “재임용 원천 봉쇄” 주장

보완입법안 통과 진통 예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8년부터 대학 강사가 교원 지위를 얻되 1년 미만 채용도 허용될 전망이다. 그러나 기존 법안보다 오히려 후퇴했다는 강사들의 반발이 거세 법 개정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교육부의 대학강사제도 정책자문위원회(자문위)는 9일 이 같은 내용의 ‘대학 강사제도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자문위는 당초 올해 시행 예정이던 고등교육법(강사법)이 논란 끝에 2018년 1월로 유예되자 법안을 보안하기 위해 꾸린 대학 및 강사단체의 협의체다.


이 번 보완입법안은 기존 강사법과 마찬가지로 강사에게 법적인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임용기간을 1년 이상으로 하도록 했다. 하지만 임용기간이 끝나면 당연 퇴직되도록 하고, 방송통신대 출석 강사(학기당 6~8시간) 팀티칭(여러 강사가 한 강의 담당)ㆍ계절학기 수업 담당강사 대체강사 등은 1년 미만으로 임용할 수 있는 예외 사유를 새로 만들었다.


또 기존에는 강사에게 전임교원과 마찬가지로 학생에 대한 교육과 지도, 연구 임무를 부여하고 있으나 이번 안에선 교육만 하도록 했다. 주당 9시간이었던 책임수업 시수는 이번에 따로 규정하지 않았다.


대 학강사 처우개선안도 발표했다. 국립대는 매년 공무원 보수인상률 수준으로 강의료를 인상하고, 사립대는 강사에게 교재, 참고서적 구입비 등을 지원하는 ‘강의장려금 지원사업’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교육부는 자문위의 안을 토대로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올해 안에 강사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하 지만 자문위에 참여했던 강사단체들은 오히려 강사들의 처우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며 이번 방안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1년 미만 임용 허용은 대학 측의 편법을 조장할 가능성이 크고, 당연퇴직은 해고를 법으로 명시한 것이나 다름없어 재임용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이다.


강사 임무를 교육으로만 한정하고 연구와 학생지도를 제외한 데 대한 반발도 크다. 김동애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 본부장은 “강사가 어떻게 연구를 하지 않고 학생을 교육할 수 있냐”며 “양질의 교육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연구와 지도를 제외시킨 것은 연구비와 지도수당 등을 주지 않으려는 대학 측의 꼼수”라고 비판했다.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역시 이 같은 입장으로, 자문위 보완책을 폐기하고 기존 강사법을 시행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자문위 참여 강사단체인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한교조)의 임순광 위원장은 “우리는 이번 대책이 ‘개악’이라고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는데 교육부가 마치 강사단체들도 합의한 것처럼 보도자료를 뿌렸다”며 “교육부는 이 안을 폐기하고, 국회에 전담기구를 설치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교조는 또 책임수업 시수를 정하지 않으면 한 강사에게 많은 강의를 맡겨, 강의를 받지 못한 강사들이 대량 해고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축인 대학단체들은 강사법 시행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사법은 2011년 국회를 통과해 2012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대량 해고 발생 우려와 강사 처우 개선 미비 등 강사들의 반대로 법 시행이 세 번이나 유예됐다. 지난해 말 2년간 다시 유예돼 2018년 1월 시행될 예정이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2016. 9. 11. 01:11

'1년 미만 임용 허용'..강사법 보완책 '논란' EBS|이수민 기자

'1년 미만 임용 허용'..강사법 보완책 '논란' EBS|이수민 기자
입력 16.09.09. 21:35 (수정 16.09.09. 21:35)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60909213520015

[EBS 저녁뉴스]

[EBS 뉴스G]

대학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세 차례나 유예된 ‘강사법’에 

대한 보완책이 나왔습니다. 대학 시간강사도 교원으로 

인정하도록 했지만, 임용의 예외 조항을 두어, 반쪽짜리 

보완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수민 기자입니다.


[리포트]


'대학강사제도 정책자문위원회'가 내놓은 

강사제도 종합대책은, 

대학 강사에게 법적인 교원지위를 부여하고, 

1년 이상 임용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인터뷰: 남궁곤 위원장 / 대학강사제도 정책자문위원회

"강사에게 교원으로서 법적인 신분을 부여하고 임용기간 중에는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분을 제한하는 등 신분을 보장해주고…"


강사 채용의 공정성을 위해 

별도의 심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강의료 인상과 강의 지원금 지급 등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예외조항’입니다. 


임용 원칙에 예외를 둬, 

팀티칭이나 계절학기 강사, 대체 강사 등에 한해 

1년 미만의 임용도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인터뷰: 남궁곤 위원장 / 대학강사제도 정책자문위원회

"교육과정 운영상 발생할 수 있는 경직성을 완화시키기 위해 

1년 미만 임용의 예외 사유를 엄정하게 법에 규정하도록…"


대학이 한 학기 단위로 강사를 교체할 수 있는 셈이라, 

강사들의 고용 안정을 보장한다는 강사법의 취지를 

무색케 한다는 비판입니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입장문을 내고, 

이 같은 예외조항은 결국 강사 대량 해고 사태를 

반복할 거라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강사의 임무를 ‘교육’으로만 한정한 복무규정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강사들이 강의가 아닌 ‘연구’나 ‘학생 지도’는 

할 수 없도록 명시해,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제한한다는 비판입니다.


인터뷰: 김영곤 위원장 / 전국대학강사노조

"강의만 하라 그 얘긴데, 연구 없이 강의할 수 없고 

학생들과의 관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대학에서 교육 기능도 

제대로 할 수 없거든요."


대학강사 단체들이 잇따라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교육부는 이달 안에 강사법 보완입법을 확정해 

국회에 상정할 계획입니다. 


EBS 뉴스 이수민입니다.

2016. 9. 11. 01:00

'시간강사법' 국회앞 최장기 농성... 김영곤-김동애씨 부부/경향신문 포토다큐

[포토다큐]10년의 외침, 길에서 맞은 칠순…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사진·글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ㆍ‘시간강사법’ 국회 앞 최장기 농성…김영곤·김동애씨 부부

김영곤·김동애씨 부부가 국회 앞에서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10년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국회 앞 최장기 농성이다. 부부는 2009년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본부장 김동애)와 2011년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대표 김영곤)을 결성해 투쟁을 이끌어오고 있다.

김영곤·김동애씨 부부가 국회 앞에서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10년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국회 앞 최장기 농성이다. 부부는 2009년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본부장 김동애)와 2011년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대표 김영곤)을 결성해 투쟁을 이끌어오고 있다.

대학 시간강사를 흔히 ‘보따리 장사’라고 부른다. 강의는 하는데 학교에 책상 하나 없이 책 보따리 달랑 들고 이 학교 저 학교 떠돌아다닌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이처럼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시간강사들이 전체 대학 강의의 30%가량을 맡고 있다. 이들은 평균 6개월도 안돼 학교를 옮겨 다닌다. 그나마 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다.

지난 2010년 조선대학교 서정민 강사가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의 대학 내 차별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강사의 법적 교원 지위 보장과 처우 개선에 관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것이 2011년 국회를 통과한 소위 ‘시간강사법’이다. 하지만, 알맹이 없는 법은 강사에 대한 실질적 처우 개선은 없고, 강사들의 대량해고만을 초래한다는 반발 속에 몇 년째 시행이 늦춰지고 있다.

부부는 주말에는 충남 당진 집에 내려가 이틀을 보낸다. 논 3000평을 임차해 우렁이 농법으로 쌀농사를 짓고 텃밭을 일군다. 농성장에서 가져온 빨래를 하고 밑반찬을 만들어 일요일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부부는 주말에는 충남 당진 집에 내려가 이틀을 보낸다. 논 3000평을 임차해 우렁이 농법으로 쌀농사를 짓고 텃밭을 일군다. 농성장에서 가져온 빨래를 하고 밑반찬을 만들어 일요일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100m가량 떨어진 건물 담장 앞에 오래된 텐트가 하나 세워져 있다. 텐트 옆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강사 교원 신분 회복한 강사법 즉각 인정하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놓여 있다. 사람들은 작고 낡은 텐트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친다.

이곳은 대학 시간강사 출신인 김영곤(67)·김동애(69)씨 부부의 농성장이다. 부부는 이곳에서 숙식하며 시간강사 교원 신분 회복을 촉구하는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다. 2007년 9월7일 농성을 시작한 이후 벌써 10년째다. 국회 앞 최장기 농성장이다. 그동안 구청과 경찰에 의해 강제 철거당한 경우가 세 번이고 비바람에 찢기고 닳아서 새로 바꾼 텐트만 5개가 넘는다. 농성 시작 초기에는 함께하는 강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장기농성의 어려움과 의견 차이로 2009년 모두 떠나고 지금은 부부 두 사람만 텐트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26일 아침, 텐트농성장에서 칠순 생일을 맞은 김동애씨가 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다.

지난달 26일 아침, 텐트농성장에서 칠순 생일을 맞은 김동애씨가 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다.

1.5평 남짓한 좁은 천막 안에는 부부의 살림살이로 가득 차 있다. 작은 냉장고와 정수기가 왼쪽에 놓여 있고, 중앙에 작은 밥상이 있다. 밥상 오른쪽이 부부가 몸을 누이는 공간이다. 천장이 낮아 허리조차 펼 수가 없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아침밥을 짓는 것으로 부부는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점심때는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다. 오후에는 해고 강사 철회 투쟁을 벌이고 있는 대학을 찾아 연대시위에 참가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고 서정민 강사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인 광주고법을 찾아 1인 시위를 한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는 충남 당진 시골집에 내려간다. 주말 동안 논과 텃밭에서 농사일을 하며 밀린 빨래와 농성장에서 먹을 밑반찬을 준비한다. 텃밭 규모는 작아도 봄부터 가을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일요일에는 다시 국회 앞 농성장으로 돌아온다.

지난달 26일 아침, 부부는 천막농성장 작은 밥상에 마주 앉았다. 밥상 위에는 조그만 케이크가 하나 놓였다. 남편 김씨가 초에 불을 붙이며 부인의 ‘칠순’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길바닥에서 생일을 맞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칠순까지 맞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부부는 촛불을 끄며 서로를 위로했다.

“장기농성의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들에게 잊혀져 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10년을 했느냐고 하는데, 하루하루 끊임없이 싸워야 할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10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던 외로운 시간, 하지만 한 사람 두 사람 천막농성에 관심을 가져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처음 농성을 같이했던 사람들은 떠나고 없지만 지금은 대학생들과 학부모 시민단체 등 새로운 사람들이 천막농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맵고 쓰고 달고 시고 떫은 노숙투쟁은 이제 부부에게 일상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시간강사 교원 지위가 온전히 회복될 때까지 여전히 대낮에도 등불을 켜고 길 위에서 길을 찾을 것입니다.” 이들 부부의 기나긴 싸움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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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210100&artid=201609092034005#csidx474dc5abc5cbb7198a7a6ea7c5a881a
[포토다큐]10년의 외침, 길에서 맞은 칠순…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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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210100&artid=201609092034005#csidx3f087d3496291f1b9bf5e99b1f525d6

[포토다큐] 10년의 외침, 길에서 맞은 칠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시간강사법' 국회앞 최장기 농성... 김영곤-김동애씨 부부/경향신문 포토다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210100&artid=201609092034005

2016. 8. 31. 18:51

대학기능 부정하는 강사법 종합대책시안 제15조 ③항을 삭제해야

대학기능을 부정하는 강사법 종합대책[시안] 제15조 ③항(신설)을 삭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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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강사법 시행을 2년 유예한 뒤 대학 강사제도 정책자문위원회에서 마련한 강사법 보완 의견에서 가장 큰 쟁점은 교원의 임무 범위이다.
종합대책[시안]에서,
고등교육법 제15조(교직원의 임무) ② 교수 부교수 조교수는 학생을 교육·지도하고 학문을 연구한다.인데,
동 법 ③(신설) 강사는 교육과정상 필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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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을 유보한 강사법에서는 위 ②항처럼 (교수 부교수 조교수) 강사의 임무는 학생을 교육·지도하고 학문을 연구한다. 이다.
이렇게 강사의 임무가 강사법에서 크게 후퇴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③항을 삭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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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를 뽑을 때 연구경력 강의경력을 보는데 임무를 교육 즉 강의에 한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지도기능은 학생지도나 사회봉사인데 강사가 그런 것을 하면 안되나?
강사는 전임교수보다 젊고 새로운 연구경향을 잘 안다. 그러므로 학생이 장래를 걱정할 때 이런 젊은 강사들이 도움이 된다. 특히 지식사회가 되면서 앞으로 어떤 사회가 될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걱정하는 학생들에게 도움 된다. 일자리 정책에 도움이 되는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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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은 전문대학협의회 쪽에서 나왔다.
즉 “... 현실적으로 강사에게 교육 외에 연구와 봉사의 임무를 부여한다면 그것을 악용하여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전문대학의 경우 전문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해 현장의 전문가를 강사로 초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구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은 강사의 초빙에 어려움을 경험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강사의 임무는 교육으로 하고 강사의 연구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김이영 수성대학교 교학지원처장, 「대학 강사제도 종합대책 공청회 토론」, 『-국회 부대의견에 따라 마련한- 대학 강사제도 종합대책[시안] 공청회』, 대학 강사제도 정책자문위원회, 2016.7.20., 67쪽)
(이 자료는 교육부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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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대 강사는 주로 현장 전문가이므로 연구가 필요없다는 주장이다. 현장 전문가라도 연구가 필요하다. 전문대 강사에도 연구자가 많다.
이렇게 법을 개정하면 이것은 전문대에게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대 등 한국의 모든 대학에 적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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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 양보한다 하더라도 전문대의 특수한 사정을 대학 모두에게 적용해 일반화하는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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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한다면
시도지역에 위치한 2년제 대학 강사들은 지역 사정을 연구하지 않고, 지역 사정을 교육에 반영하지 못한다. 기술학원과 다름 없게 된다. 지역 대학이 지역사회 선순환의 중심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 법은 서울이나 지방 주요 대학에서 교수의 3분 2를 차지하는 강사에게서 연구기능을 없애는 것은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 현재 강사는 자신의 연구를 하던 교수나 박사과정 생의 논문을 대필시키든 대학 연구의 추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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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다면 서울, 지방대도시, 지방소도시의 대학교육 격차가 더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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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학 정책이 인문학을 죽이는 데다 강사의 연구 임무까지 부정하는 대학을 대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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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대책[시안] 제15조 ③항을 삭제해야 한다.



2016. 8. 19. 00:04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논문대필 사건 대법원 유죄 판결문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가 강사에게 논문대필 시킨 사건의 대법원 유죄 판결문입니다.

http://stip.or.kr/bbs/board.php?bo_table=haksul&wr_id=1583&page=0&sca=&sfl=&stx=&sst=&sod=&spt=0&page=0

2016. 8. 18. 23:55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 논문대필 서울고법 유죄 판결문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가 계약교수에게 논문대필시킨 사건의 서울고법 유죄판결문.

http://stip.or.kr/bbs/board.php?bo_table=haksul&wr_id=1582&page=0&sca=&sfl=&stx=&sst=&sod=&spt=0&page=0


2016. 8. 18. 21:29

서정민 열사 손배소 재판이 8/19 오후4시 광주고법에서 열립니다

서정민 열사 재판이 내일 8월 19일 오후 4시 광주고등법원 204호에서 재판이 열립니다.
조선대 논문 대필 사건 관련해 서정민 열사 유족이 조학* 교수와 조선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결심입니다.
방청과 마음 속의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2016. 8. 16. 06:48

조선대 논문대필 사건 재조사 요구서입니다

조선대 논문대필 사건 재조사 요구서입니다.
조학* 지도교수는 서정민 강사에게 10년동안 논문 등 54편을 대필시켰습니다.
조선대는 2010년 논문대필 사건에서 조사위는 조사 대상 23편 가운데 1편이 대필이라고 했으나, 연구윤리위원회는 이마저 무시하고 공동연구라 결론지었습니다.
서정민 열사 유족이 재조사를 요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