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 22:13

세계의 대학과 학문의 자유/박광주


세계의 대학과 학문의 자유
[오늘, 대학을 말한다-13]
2009년 08월 02일 (일) 01:44:44 [조회수 : 40] 박광주 .

 

   
▲학문의 자유는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개념이다.(사진/이광수)

대학은 과거를 밝혀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구상하는 싱크탱크다. 과거, 현재, 미래, 이 모든 시대에 대해 인류는 아직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역사를 “사실이라는 핵을 둘러 싼 해석이라는 과육”으로 비유했던 역사학자 카의 말을 차용해서 말한다면, 우리는 아직 ‘사실’에 대해서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을 뿐만 아니라, ‘해석’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에 따라 너무나 다양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다.

주어진 틀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사회적- 속에서 사유하도록 강요된다면 우리는 지금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한 치도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미지의 것을 새롭게 밝혀내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생각을 다듬고 (연구), 전달하는 (교육) 곳인 대학은 이 점에서 세상의 어떠한 속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만 한다. 주어진 틀 속에서 사고하는 곳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단적인 생각이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는 곳에서만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날 수 있다. 인류문명의 진보는 기존의 틀에 도전하거나 틀을 깨는 자유로운 사고에 의해 이끌어져 왔다. 모든 창조적 사고는 자유롭다.

학문의 자유는 인간이 지닌 기본적 인권의 일부이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전달할 수 있는 권리는 대학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민주사회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만 하는 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학문의 자유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대학인들의 발언이 지닌 대중적 파급효과 때문이다. 정권이나 종교세력 또는 경제세력이나 사회세력들이 대학인들의 발언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 세계적으로 대학과 대학인이 누리고 있는 학문의 자유는 자국에서 보장되고 있는 기본적 인권의 정도에 비례한다.(영국에서는 대학의 자율성이 미국에서는 대학인 개개인의 자율성이 강조된다) 비교적 인권보장이 잘 되고 있는 유럽과 북미지역에서는 학문의 자유가 잘 보장되고 있는 셈이지만, 정치적 자유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지역에서는 학문의 자유가 위태롭다. 아프리카지역의 경우 전반적으로 학문의 자유가 취약한 상황이고, 중동지역이나 아시아의 일부에서도 학문의 자유는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5세기 르네상스의 여명기에 그리스의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망명한 사건 이래 지식인들의 고난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다. 1930년대와 40년대 유럽전역에 걸친 학자들에 대한 박해, 냉전기간 동안 동구에서의 학자들에 대한 숙청에 쌍벽을 이룰 정도의 미국에서의 반공을 앞세운 학자들에 대한 숙청, 1970년대와 80년대 중국, 동남아, 남미 등지에서의 지식인 탄압운동, 그리고 1990년대 국내외적인 분쟁과 자원고갈사태 속에서 자행된 아프리카의 대학인들에 대한 탄압 등에서 보는 바와 같다.

‘학문의 자유를 위한 대학인들 (Academics For Academic Freedom: AFAF)’, ‘망명 대학인들을 돕는 모임 (Council for assisting refugee academics: CARA)', '위험에 처한 학자들 (Scholars at Risk: SAR)', ’교육과 학문의 권리를 위한 연대 (Network for Education & Academic Rights: NEAR)' 등 학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만 결성된 국제적 기구들이 존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지역에서는 유럽 최고의 대학인 볼로냐대학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계대학헌장”이라는 볼로냐선언에서 학문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미국대학교수협회가 작성한 “1940년 학문의 자유와 정년보장의 원칙선언” 에서 학문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세계의 대학인들이 함께 만든 ‘학문의 자유를 위한 대학인들’ 모임은 “강의실의 안팎에서 기존의 지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시험하고, 또한 논쟁적이거나 인기없는 견해를 사람들의 호오(好惡)에도 불구하고 개진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자유를 대학인들이 지닌다는 사실과, 그리고 대학당국자들이 이 같은 자유를 제한하거나 처벌 또는 해고의 사유로 삼을 수 있는 어떠한 권리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원칙이 학문의 자유의 근본이라는 “학문의 자유 선언”을 하고 있다.

학문의 자유란 궁극적으로 교수직의 안정성과 직결된다. 대학인이 그의 연구나 강의 및 사회활동과 관련하여 교수직에 위협을 받게 된다면, 이는 학문의 자유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된다. 기본적 인권에 대한 인식이 정착되지 못한 곳에서 이 같은 위협은 상존한다. 군사정권시절의 남미나 비민주적 정권들이 세력을 지니고 있는 아프리카나 중동의 일부국가들, 그리고 아시아의 일부국가들의 경우 기존질서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정부의 것과는 다른 견해를 표방하는 교수들에 대한 직접적인 박해는 여전하다. 이들은 “위험인물”, “혐의자”, “비애국적”, “반체제적”, “이적행위자”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정치권력의 테러나 과격사회세력의 타도대상이 된다.

한국사회에서 정부 비판적 발언이나 진보적 발언에 대해 “반체제적”, “용공분자”, “좌빨”, “친북세력” 등의 멍에를 덧쒸우는 것과 같다. 카이로에 있는 아메리칸대학교의 사회학교수 사드 이브라힘은 EU의 지원을 받아 이집트의 선거부정에 대한 기록영화를 제작하다가 허가받지 않은 자금수수, 허위사실의 해외유포, 자금횡령등의 죄목으로 투옥되었다. 정부의 공식발표보다도 더 높은 유아사망율을 발표한 아프리카의 교수가 대학강단에서 강제로 추방된 사례도 있다. 심지어는 반체제로 낙인찍힌 교수가 교직을 박탈당하는 것을 넘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 남의 나라 예를 들 것도 없이 유신시절 간첩으로 몰려 의문사한 최종길 교수의 경우가 있다.

학문의 자유가 정착되었다고 하는 곳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 볼로냐선언이 있고 미국에서 미국대학교수협회의 선언이 있다는 사실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다. 최근 미국의 10대 사학중의 하나인 디폴대학교에서 정치학자 핑클스타인에 대한 정년보장거부사건은 교수가 학문적 양심에 따라서 한 발언으로 인해 미국대학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다. 미국의 중동외교정책에 대한 친이스라엘로비에 대해 강하게 비판해 온 핑클스타인에 대한 정년보장이 해당학과와 해당대학의 강력한 추천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친이스라엘 그룹의 영향을 받아 학교당국에 의해 거부되었다.

핑클스타인사건은 학자들이 대중적으로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민주주의사회에서도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분명히 해준 사건이라 하겠다.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는 비민주적 국가권력에 의한 명백한 인권탄압의 경우뿐만 아니라, 민주사회에 있어서도 대중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이슈들 예컨대, 전쟁과 평화 또는 국가안보, 노동문제, 경제 규제와 탈규제, 국유화와 민영화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대학외부로부터의 간섭에 노출되기 쉽다. 정당이나 정파, 정치인개개인, 경제적 이해관계집단, 종교집단, 애국조직, 과격민간집단, 인종단체 등 다양한 외부세력으로부터의 간섭에 노출된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학의 상업화경향은 민간후원자들의 입김에 대학당국자들이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2008년 10월 에치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에서 사흘동안 개최되었던 “동부 아프리카 대학들의 학문의 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는 국제 포럼에서 모든 참가자들이 학문의 자유가 유럽적 특수개념이 아니라, 마치 인권이 보편적인 것처럼 보편적 개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것은 학문의 자유가 갖는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교육을 통해 각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미래의 세대를 생산하고, 궁극적으로는 인류사회를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창조적 사고와 패러다임 개척적인 주장이 필요하다.

기득권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또는 넓은 의미에서 사회적이든- 의 압력에 순응하는 ‘안이한’ 사고만이 허용된다면, 현실이 당면한 문제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상황 하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을 우선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갈리레오나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결코 나올 수 없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인간사회의 제문제들이 결코 개선될 수 없다. 봉건적 신분제도, 사회적 불평등, 인종적․민족적 편견, 정치적 갈등에 기반한 현상황의 돌파구가 결코 열릴 수가 없다. 평화, 사회정의, 협력과 경쟁의 조화라는 보다 인간적인 삶의 조건을 위한 새로운 사고가 피어 날 수가 없다.

기본적 인권이나 정치적 자유와 마찬가지로 학문의 자유 역시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볼 때 균질적이지 않다. 학문의 자유를 위한 전세계적인 연대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고 또 작동해야 할 이유이다.

박광주 (부산대학교 교수)
사진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 인도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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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31. 20:00

제르베르 도리약과 학인의 자유/곽차섭






[오늘, 대학을 말한다-12]







2009년 07월 29일 (수) 04:36:15 [조회수 : 115] 곽차섭 부산대 사학과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하는 고등교육법 개정 촉구 국회앞 텐트농성 694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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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공간-비정규직교수의 교원지위 회복을 요구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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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인의 자유는 학문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다(사진/이광수)

중세와 르네상스의 학자들은 종종 방랑자였다. 아직 지식이 표준화 되어 있지 않던 시절, 그들은 더 나은 지식을 얻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생계를 이어줄 후원자를 만나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다. 이른바 “방랑학자”(wandering scholars)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 중 가장 전설적인 인물이 뒤에 교황 실베스테르 2세가 된 제르베르(946?-1003)이다. 그는 비록 최초의 방랑학자는 아니었지만 가장 유명한 학자였다. “악마만큼 지혜로운 자가 있을 수 있는가?” 파뉘르쥬가 물었다. “아니.” 팡타그뤼엘이 대답했다. “신의 특별한 은총에 의하지 않고는 그렇게 될 수가 없지.” 중세 초기의 사람들에게 제르베르의 놀라운 학식은 신과 악마를 연관시키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었다.

제르베르는 프랑스 중부 산악지대인 오베르뉴 부근에서 태어났다. 그가 출생한 정확한 장소도 부모의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하층계급 출신으로 보인다. 963년경 그는 오리약의 생 제랄드 수도원에 들어간다 (그래서 뒤에 오리약의 제르베르, 즉 제르베르 도리약으로 알려지게 된다). 선자(善者) 제랄드는 이 수도원을 약 60년 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성 근처에 세웠고, 그 스스로도 그곳에 묻혔다. 그것은 클뤼니 수도원처럼 엄격한 베네딕트파 수도원으로, 어떤 지역 권위로부터도 독립적이며 오직 교황에게만 복종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그는 라이몽이라는 이름의 선생으로부터 라틴어 문법을 배웠다. 이때쯤이면 “문법”은 3학과--문법, 논리학, 수사학--의 하나로 가르쳐지고 있었다.

967년 바르셀로나의 보렐 백작이 수도원을 방문했고, 대수도원장은 제르베르를 에스파냐로 데려가서 수학을 배우게 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였다. 제르베르는 아마도 똑똑한 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대수도원장은 그에게 고급 4학과--산술, 음악, 기하, 천문--까지 가르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렐은 이를 허락하였고, 그를 주교좌 학교가 있던 빅의 주교에게로 보냈다. 바르셀로나와 빅이 위치한 카탈루냐는 국경지역이었고, 그리하여 카탈루냐와 남쪽에 위치한 알 안달루스의 무슬림들과는 대단히 빈번한 교통이 있었다.

당시 안 안달루스는 기독교 유럽보다 훨씬 더 진보한 곳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 도서관도 장서수가 1천권이 넘지 못한 데 반해, 무슬림 수도인 코르도바의 도서관은 무려 4십만권의 장서를 자랑하고 있었다. 카탈루냐는 무슬림의 문화 중심지와 가까운 잇점이 있었고, 그래서 빅 주교좌 성당과 인근의 리폴 수도원 도서관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곳이었다.

무슬림 세계와 인접해 있다는 것은 단지 4학과의 문제와 관련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슬림들은 그리스 및 페르시아 과학의 계승자였고, 수많은 고전을 아랍어로 번역하였다. 동시에 아랍의 여행자와 상인들은 인도 및 중국과 교류하면서 그곳의 선진 문명을 흡수한 바 있었다. 무슬림 “과학자들”은 높이 평가받았고, 그중에서도 안 안달루스가 중심이었다.

당시 무슬림 천문학자는 세계 최고 중 하나였고, 천문의를 능숙하게 다루면서 천체 측정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들의 흔적은 백조자리의 알파성 데네브나 항성 중 가장 밝은 시리우스 성 등 대부분의 주요 행성의 이름이나, 천문학에 관련된 다른 많은 것들, 예컨대 방위각을 뜻하는 “azimuth”나 천문서인 “almagest,” 혹은 황도대(黃道帶)를 의미하는 “Zodiac” 등의 어휘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아랍인들은 산술에서도 훨씬 더 앞서 있었다. 그들은 인도에서 영(零)의 개념을 차용하였고, 근대와 같이 위치로 값을 결정하는 수체계를 사용하였다. 사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숫자의 모양도 아랍식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또한 중국으로부터 주판을 배워와 그것을 능숙하게 사용하기도 했다. 그들은 산술을 넘어서 대수학을 정립하였고, 소수(素數)와 좌표방정식도 연구하였다. 그들은 비례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상당히 정교한 방식으로 음악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각 음표를 정확히 구분하고, 화음과 불협화음에 대한 이론들을 발전시키고, 매우 정확히 튜닝을 한 악기를 만들었다. 빅의 주교좌 성당 학교는 제르베르에게 이 모든 지식의 많은 부분을 제공할 수 있었고, 제르베르는 그 기회를 십분 활용하였다.

에스파냐를 유랑하면서 무슬림의 선진 학문을 흡수한 제르베르는 드디어 랭스에서 이름을 알릴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는 수력으로 움직이는 파이프 오르간 제작의 과제를 맡았다. 물론 이전에도 오르간은 있었지만, 그것은 오르간 연주자가 계속 페달을 밟음으로써 발생하는 공기압으로 작동되는 것이었다. 제르베르가 만든 오르간은 소리를 지속적으로, 더 넓은 음역까지 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수학적으로도 잘 맞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화음은 서양의 어떤 오르간 보다 나았다.

제르베르는 또한 아라비아 숫자를 습득하여 로마식 숫자로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운 계산도 암산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주판 공부를 계속했고, 아주 큰 주판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는 랭스 성당 회중석 부분의 마루에 주판을 그려놓고 주판알 대용으로 수많은 원반들을 설치하였다. 그런 뒤, 성당학교 학생 약 64명을 모아놓고는 그들에게 원반을 밀어낼 막대기를 주고 자신은 마루 전체를 볼 수 있게끔 오르간 위쪽에 높이 앉았다. 그가 지시를 하면 학생들은 마치 원반밀어치기 놀이를 하듯이 원반을 움직였다. 그는 이런 식으로 이전에 비해 훨씬 더 큰 숫자나 작은 숫자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다. 그는 이후 주판에 관한 책을 썼고, 이는 새로운 성당학교에서 표준적인 것이 되었을 뿐 아니라 서양에서의 수학연구에 혁신적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가 보여준 경이로운 지식의 한 예에 불과하다.

제르베르의 놀라운 학식은 자신의 끝없는 호기심과 새로운 학문을 배울 수 있다면 어디라도 달려가는 뜨거운 열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후원자와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코 학인으로서의 자유를 저버린 적은 없었다. 학인의 자유는 후원자의 존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먼 과거, 미지의 땅에 살았던 한 방랑학자의 행적이 작금의 우리에게 한줄기 빛을 던져준다면, 학인은 본질적으로 방랑하는 자유인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곽차섭 (부산대 사학과)  
사진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 인도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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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26. 22:26

부동산 재산 순으로 일류대학 가는 나라/손낙구










부동산 재산 순으로 일류대학 가는 나라
[오늘, 대학을 말한다-11] "강남구는 3년 동안 총 634명을 서울대에 입학시켜"







2009년 07월 25일 (토) 02:25:43 [조회수 : 403] 손낙구 .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하는 고등교육법 개정 촉구 국회앞 텐트농성 689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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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공간-비정규직교수의 교원지위 회복을 요구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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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광수

“서울대 합격은 아파트 가격 순이다. 8억대 아파트에 살면 서울대에 28명이 합격하고, 7억대 아파트에 살면 22명, 5억대 아파트에 살면 12명이 합격한다. 4억은 9명, 3억은 8명이 합격한다.”
숫자놀음 같은 ‘아파트값과 서울대 합격률 사이의 상관관계’는 필자가 2004∼06학년도 ‘서울 시내 일반계 고등학교 졸업생 1,000명당 서울대 합격자 수’와 2007년 1월 1일 국토해양부 공시가격 기준 ‘서울시 구별 공동주택 평균 가격’ 통계를 비교해 얻은 결론이다.

아파트값과 서울대 합격률의 관계

동네별 평균 공동주택 가격을 기준으로 서울을 1억대부터 7억 이상의 여섯 개 권역으로 나눈 다음 권역별 1,000명당 서울대 합격자 수를 내보았다.

먼저 아파트 등 집값이 7억 이상인 강남구‧서초구에서는 고3 졸업생 1,000명당 평균 25명을 서울대에 합격시켰다. 집값이 평균 8억8,000만 원인 강남구는 3년 동안 총 634명을 서울대에 입학시켜 졸업생 1,000명당 28명이 합격하는 가장 높은 진학률을 보였다. 집 1채당 평균 가격이 7억7,000만 원인 서초구는 312명을 합격시켜 1,000명당 22명꼴로 뒤를 이었다. 집값이 나란히 5억6,000~5억7,000만 원인 송파‧용산구의 1,000명당 서울대 합격자 수도 나란히 12.1명과 12.5명으로 평균 12명이었다.

평균 집값이 5억이 넘는 강남‧서초‧용산‧송파구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는 모두 45개로 서울시 전체(202개)의 22% 수준인데, 모든 학교가 100%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하며 3년간 서울시 전체 합격자(2,909명)의 44%에 해당하는 1,267명을 입학시켰다.

반면 집값이 1억3,000~1억9,000만 원에 머무른 은평‧강북‧중랑 등 7개 구에서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은 고3 졸업생 1,000명당 평균 6명에 머물렀다. 또 집값이 2억1,000~2억9,000만 원 사이인 관악‧종로‧강서 등 8개 구도 1,000명당 평균 7명에 그쳤다.

평균 집값이 3억이 채 안 되는 이들 15개 구에 있는 일반 고교는 113개로 서울시 전체의 56% 수준이지만, 3년간 서울대 합격자 수는 1,051명으로 서울시 전체 합격자의 36%에 머물렀다.

물론 예외도 있다. 집값이 3억대인 동작‧성동‧광진구의 1,000명당 합격자는 평균 8명이지만, 평균 집값이 3억3,000만 원인 성동구는 평균 3명으로 낮다. 4억대인 강동‧양천‧영등포구의 평균 합격자는 9명인데 영등포구는 4명에 그치고 있다. 반대로 평균 집값 1억대인 노원구와 서대문구는 9명으로 평균 합격자 수 6명보다 많다. 2억대인 강서구도 11명으로 평균 7명보다 합격자 수가 많다.

그러나 이들 5개 구를 제외한 20개 구는 ‘아파트값이 비싼 부자 동네에 살수록 서울대에 많이 합격한다’는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부동산 재산 격차 → 수입 격차 → 사교육비 격차 → 학력 격차

아파트값 격차로 상징되는 부동산 격차가 서울대 합격자 수로 상징되는 교육 격차 또는 학력 격차로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우선 한 달 동안 들어오는 수입의 격차가 크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수입의 격차는 직장 생활이나 장사, 사업 등으로 얻는 소득의 격차도 있지만, 아파트값이 올라서 얻게 되는 자본이득의 격차가 오히려 더 크게 나타난다.

통계를 보면 서울대 합격자 수가 28명으로 가장 많은 강남구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307만 원으로 서울대 합격자 수가 적은 은평구 등 7개 구 236만 원의 1.3배 수준이다. 그런데 한 달 평균 아파트값이 올라서 얻는 자본이득은 강남구가 667만 원으로 하위 7개 구 105만 원의 6.4배에 달한다.

소득과 아파트값 상승으로 얻는 자본이득을 합친 한 달 평균 수입을 보면 강남구는 974만 원, 서초구는 959만 원, 용산‧송파구는 679만 원이다. 수입의 격차만큼 서울대 합격자 수도 28명, 22명, 12명으로 차이가 났다.

한 달 수입이 341만 원으로 가장 적은 은평구 등 7개 구는 6명, 439만 원인 관악구 등 8개 구는 7명을 각각 서울대에 입학시켰다. 481만 원인 광진‧성동‧동작구는 8명을, 568만 원인 영등포‧양천‧강동구는 9명을 각각 합격시켰다.

한 달 수입을 1년 단위로 계산하면 연간 소득과 아파트값 상승에 따른 수입이 1억이 넘는 강남‧서초구는 서울대에 20명 이상을 합격시켰고, 8,000만 원대(용산‧송파)는 12명, 6,000만 원대(영등포 등)는 9명을 합격시킨 셈이다. 또 연 수입 5,772만 원인 광진 등 3개 구와 5,268만 원인 관악 등 8개 구는 각각 8명과 7명을 합격시켰고, 가장 낮은 4,000만 원대인 은평 등 7개 구는 가장 적은 6명을 합격시킨 셈이다.

사교육비 많이 쓸수록 수능점수 높아

그러나 아파트값과 서울대 합격률 사이에 더 직접적인 다리 노릇을 하는 것은 사교육비 격차다.

부동산 재산이 많고 수입도 많은 부잣집 자식과, 재산도 없고 수입도 적은 가난한 집 자식이 있다고 하자. 둘 다 머리도 좋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부잣집 자식은 가난한 집 자식에 비해 1년간 사교육비를 2배 들여 좋은 과외공부를 시켰다고 하자. “과외비 쓰는 만큼 성적이 올라가나?” 불행하게도 통계는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김경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05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월소득 300만 원 미만의 부모를 둔 자식은 한 달 평균 20만 원의 사교육비를 쓰고 수능점수 291점을 받았고, 소득 300~500만 원은 사교육비 42만 원을 쓰고 306점을, 소득 500만 원 이상은 64만 원을 써서 317점을 받았다.

이런 사실은 지역별 사교육비와 수능 점수의 연관 관계에서도 그대로 확인되고 있다. 서울시 전체 학생들은 1년간 평균 592만 원의 사교육비를 쓰고 수능점수를 평균 301점 얻었으며, 서울시 전체 고3 졸업생 가운데 1,000명 중 8명꼴(일반고 기준)로 서울대에 합격했다.

그런데 강남‧서초구의 경우, 2004년 한 해 동안 쓴 사교육비가 1인당 평균 952만 원이었고, 그해 이 지역 대입 수험생들이 얻은 수능 점수는 평균 314.7로 졸업생 1,000명 가운데 25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반면 영등포구와 강북구의 사교육비는 493만 원으로 강남‧서초구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으며, 수능 점수도 35점이 낮은 평균 279점이었고, 서울대 합격자 수도 1,000명당 5명 수준에 그쳤다.

시도별로 부동산값과 서울대 연‧고대 합격 현황을 살펴보면 부동산 격차가 학력 격차로 이어지는 일은 서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서울이 부동산과 교육문제를 두고 남북 격차가 뚜렷하다면 대전 지역은 동서 격차가 깊어지고 있다. 강남권 고등학교보다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에 더 많은 합격자를 내는 특목고 역시 전체 입학생 중 강남‧서초‧송파구 중학교 출신이 21.2%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전체 서울대 입학생 중 강남이나 특목고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서울대가 국회에 제출한 지난 8년간의 입학생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입학생 중 강남‧서초‧송파구 소재 고교와 특목고(자립형 사립고등학교 포함)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21.7%에서 2007년 31.5%로 오히려 늘고 있다(최순영 2007). 강남권 소재 고교 출신 비중은 2000년 11.4%에서 2007년 14.5%로 늘었는데, 경영대 23.1%, 법대 19.4%, 음대 17.9% 순으로 인기학과에 높은 합격률을 보였다. 또 특목고 출신 비중은 12%에서 8년 만에 20%로 늘었다.

상아탑, 우골탑에서 아파트탑으로

우골탑(牛骨塔)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소 팔아 자식 대학 보낸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가난한 집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면 ‘개천에서 용 났다’고 했고, 마을 어귀에 ‘경축 ○○○ 서울대 합격’ 펼침막이 걸리곤 했다.

그러나 이제 다 옛말이 됐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소 값은 떨어지고 대학 등록금은 1년에 1,000만 원을 훌쩍 넘어 소 팔아서 대학 등록금을 댈 수도 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제 대학은 특히 상위권 대학은 가난한 사람이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부잣집 자식이면 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가난한 집 자식이면 다 그렇지 못한 건 아닐 것이다. 어려운 조건을 이기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예전에 비해 극히 예외에 속하는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상위권 대학은 더 그렇다.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 재산이 많은 집안 자식이 높은 소득과 그보다 더 높은 부동산 자본이득을 배경으로 엄청난 사교육비와 공교육비를 들여서 ‘투자한 만큼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는’ 새로운 법칙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상아탑이 ‘우골탑’을 거쳐 ‘아파트탑’이 된 셈이다.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저자) 
사진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 인도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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